엄병년 씨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내 고향은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 그 자체 였다.

요즘처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지만, 계절마다 쉴 틈 없이 즐겁게 놀 수 있었던 그 고향은 지금도 나를 지난날의 그리움에 빠지게 한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때에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호미랑 바구니랑 챙겨서 내이 캐러 밭으로 친구들이랑 몰려갔었다. 무슨 경쟁이라도 붙은 듯 서로 많이 캐려고 욕심도 내보고, 신발은 온통 흙범벅이 되어도 좋았고, 반찬거리가도 내손으로 준비한 마음에 뿌듯하기까지 했었다.

여름이 되면 뽕나무 열매인 오디와 산딸기 따러 동네 산들ㅇ을 해매고 다녔고, 뽕나무에 올라갔다. 나무가 부러져 땅에 떨어진 친구를 보며 걱정보다 배를 움켜잡고 웃은 적도 있었다. 입이 시커멓게 오딧물이 들어서 선생님께 혼날까 봐 마음 졸인 기억도 지금은 그립다.

한 여름에 빼 놓을 수 없던 것은 냇가에서 물놀이하던 추억이다.

수영은 어떻게 하는지 배우지 않았어도 개헤엄이며 다이빙이며 못하는 게 없었던 그때였다.

수영복도 없이 입던 옷 그대로 들어갔다가 그대로 말려서 입고 집에 오고, 튜브가 귀했던 시절 시커먼 튜브라도 있는 친구면 부러워하기도 하고, 튜브 대신에 집에서 붉은 고무 달아를 탄 기억도 새롭다. 지금의 어느 워터파크 부럽지 않았고 물론 존 한 푼 들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낮을 보내고 밤이 도면 수박서리에 몸과 맘을 잔뜩 긴장 시키고 아무도 쫓아오지 않아도 겁에 질려 백 미터를 10초에 내달렸던 기억도 많다.

겨울이 오면 눈이 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흰 눈이 세상을 덮은 날 에는 비료부대에 짚을 잔뜩 넣어서 비탈 밭으로 가서 썰매를 타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교통이 불편해지는 이유로 눈을 반갑게 맞지 못하는 기금과는 너무 다른 행복한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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