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 입대하는 막내아들을 데리고 증평 훈련소에 도착했다. 집결 장소로 가는 아들의 왜소한 뒷모습을 바라보니 가슴이 뻐근해졌다.
고등학교시절부터 기숙사에서 10년 동안 생활을 했다. 가끔 가서 침실과 옷장 책상을 둘러보면, 알뜰하게 챙겨 준 이부자리와 옷가지들은 보이지 않고 낡고 허름한 것만 아들 몫이었다.
침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빨아 정리해서 채워놓고 와도 다음에 가 보면 여전했다.
겉옷부터 구두까지 친구들에게 내주고, 두툼한 장학금도 어려운 친구에게 돌려주는 아들이 착하기도 했지만, 야무진 색시를 맞아들여야 밥을 먹고 살 것 같았다.
몇해 전,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멀리서 온 아들은 친구 아버지 장례식에 일을 맡아 보고 집에 들렸다.
땀에 절은 옷을 입고 들어오는 아들은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버스안에 손님들이 코를 막고 아들 옆을 피했다니, 애미로서 가슴이 아팠다.
학교로 돌아간 아들은 몸살과 피부병으로 병원에 다니며 고생을 해서 애를 태우기도 했다.
바로 훈련을 시작한다고 해서 훈련소를 빠져 나왔다. 삼복더위에 땀을 쏟으며 훈련받는 신병들이 눈에 어렸다.
섭섭한 마음을 침묵 속에 기도하며 증평 버스터미널까지 왔다.
애기같은 며느리까지 보내고 나니 남편도 충혈된 눈이었지만, 나도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애물단지로 가슴 속에 파고드는 자식들은 항상 어린아이같다.
딸아이와 큰아들까지 와서 떠들썩했던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작은아들 논문을 펼쳤다.
전공이 ‘고체물리 이론’이다. 첫장부터 넘겨봐도 까막눈이라 알 수가 없다. 수학적 계산과 그래프 용어까지 생소한 영어다.
뒷장에서 한글로 쓴 ‘감사의 글’을 읽었다. 저를 낳아주시고 사랑으로 뒷바라지 해 주신 부모님께 존경과 사랑을 드립니다.
부모님의 성실하신 삶의 모습이 저에게는 순간 순간 살아가는데 가장 커다란 스승이었습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엄격한 지도교수님 밑에서 아들은 평생 동안 무언의 가장 아픈 시간들을 보낸 것이다.
포닥과정을 하던 중국인 T박사와 한 실험실에 있을 때이다. 아들은 석사과정 때, ‘비선형 동력학’을 전공했다. 박사과정을 하면서 전공을 바꾼 아들은 그동안 연구한 주요 논문자료를 T박사에게 다 준 것이 도난을 당하게 되었다.
미국의 가장 권위있는 학회지에서도 훌륭한 논문으로 통과했지만, 지도교수님과 T박사와의 좋지않은 관계로 아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다.
T박사는 교수님 이름을 빼놓고 논문을 내자는 것을 아들에게 거절 당한 후, 갑자기 행방을 감춘 것이다.
눈물까지 흘리신 교수님의 아픔과 아들의 기진하고 허탈한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목이 메이고 가슴이 쓰리다.
교수님은 법적인 문제까지 제시하며 미국학회에 아들과 함께 여러차례 서신을 주고 받았으나, 2년간 밤낮으로 연구한 아들의 논문은 T박사 손에 넘어가서 포기하게 되었다.
행방이 묘연한 중국인 T박사는 지구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런 문제로 제재를 받은 아들의 논문을 가진 T박사는 어느 나라 학회에 개인 연구논문으로 제출을 했을까?
대학시절, 자연과학개론을 배우면서 과학자들의 고민과 갈등을 예사로 흘려버린 것이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중세기 과학자들간에도 남의것을 자기 것인양, 이름을 도용하여 발표하고, 세계의 유명한 발명가로 전해지고 있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던가.
피땀의 노력으로 쌓은 아들의 논문은 T박사에 의해 외국으로 가지고 날렀어도, 아들 가슴의 상처는 조국을 지키는데 흘리는 땀방울에 씻겨 평생 가야할 학문의 길에서 좋은 성과학회지에 실려있다. 나머지는 검토 중인 리스트를 보면서, 하늘이 아들에게 준 시련으로 받아들이며 감사하고 있다.
군복무를 마치고 열심히 공부해서 인류를 위해 작은 일을 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날을 기다린다.
무더운 여름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아들의 마음을 믿으며, 군에서 만난 인연과 더불어 소중한 삶의 기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이 여름에 신병들이 훈련을 마치는 날, 퇴소식에 가서 늠름하고 씩씩한 대한의 아들들을 뜨겁게 안아 줄 것이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