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강의 저녁노을 속으로 심성은 자유로워지고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는 변화의 물결 넘쳐
여행은 인생의 참맛과 삶의 묘미 체득

여행! 유난히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여행이라는 말만 들어도 어린 아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여행 날짜가 정해지면 그날부터 기다리는 하루 하루는 바람든 고무풍선이다. 여행가방을 들고 김포공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미지의 세계로 상상의 날개를 펴고 행복해 진다.
지금까지의 해외여행은 친분있는 분들끼리 남편과의 동행이었다. 이번 여행은 처음으로 스승님을 따라 나선 10박 11일의 국제적 행사로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제67차 국제 펜대회에 참석하고 나머지 일정은 체코와 오스트리아, 그리고 헝가리의 문화예술 탐방으로 색다른 여정은 더욱 설레게 했고 기대감에 부풀게 했다. 문학에 경력이 풍부한 분들 틈에 끼었지만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모스크바의 첫인상과 메모>

말로만 듣던 러시아는 오랫동안 궁금했던 나라다. 10시간을 날아간 러시아를 모스크바 상공에서 내려다 본 첫인상은 탁 트인 넓은 국토부터 시원스러워 보였다. 넓은 들판이 잔디 대신 노란색으로 물결쳤다. 숲과 호수, 민들레 자작나무, 보리수의 가로수는 이색적이었다.
버스로 옮겨 타면서부터 가이드의 설명은 시작되었다. 차 속에서나 문화유적지, 문학가의 생가나 박물관 어디를 가나 회원들이 가이드 곁을 바짝 따라가며 메모하기에 여념이 없다.
나는 메모에 별로 신경을 안썼다. 왜냐하면 러시아를 알고 싶으면 책을 사서 보면 자세히 나와 있고 베토벤을 알고 싶으면 베토벤 책을 사서 보면 어느 나라 사람이고 몇 년도에 태어나서 무슨 일을 하다가 몇년도에 사망했다는 것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무엇하러 저렇게 메모에 열들을 올릴까 의심을 했다. 그러나 문단경력 20에서 40년에 이르는 원로 선생님들로 진지하게 메모를 하고 있었다.
80대 중반인 조경희 선생의 메모를 뒤에 따라 다니며 눈여겨 보았다. 가이드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빠른 속도로 받아 썼고 한참 가이드의 말을 받아 메모하던 중 교회 종소리가 울리자 “종소리”하고 메모를 한다. 순간 메모에 매력을 느꼈다. 준비해 갔던 노트와 펜을 꺼내 나도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과 해외여행을 많이 한 셈이다. 여행 때마다 아침 저녁 기도를 일과적으로 하기 때문에 밤에 마음 놓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새워 기도를 하고 낮에는 버스만 타면 잠에 빠져 가이드의 설명이나 바깥 풍경을 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동행한 스승님께서 여행 때만은 기도를 줄이고 여행에 목적을 두라고 하면서 메모장과 펜까지 준비해 주었다.
여행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밤에 잠을 자고 낮에 버스를 탔을 때나 관광하면서 마음 속으로 기도를 했다. 낮에 조는 일이 없었고 볼 것 다보고 가이드의 이야기도 잘 들었다. 듣는 순간 재미있고 다 알 듯 하다가도 지나고 나면 거의 잊어버렸다. 그러나 메모를 하니까 가는 곳이 더 뚜렷했고 기억에 남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지 여러 사람들이 같은 방법을 쓸 때는 뜻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신선한 공기와 자유로움>

모스크바의 공기는 신선했다. 실내에 들어갔을 때나 버스 안에서는 찌는 듯 덥다가도 밖에 나오는 순간부터 시원함과 동시에 땀기가 쏙 가시는 것이다. 아무리 더운 날씨라 해도 나무 아래 서면 더운기가 싹 가시는 것이 모스크바의 공기라 했다. 습기가 없기 때문에 끈적거리는 증세가 없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 곳의 공기는 정말 상큼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외국 여행 때마다 부러운 것이 하나 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주장대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한 편하게 사는 삶이다. 누구의 단점을 말하지 않은 것, 자기 삶에만 열중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끼리면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어디서나 포옹하고 입맞춤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싱그럽기까지 했다.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 뒤에 있는 작은 공원에서다. 남녀 학생들이 각자 술병을 들고 술과 담배를 번갈아 마시고 피우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어느 누구도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 사람도 없었고 간섭하는 사람도 없었다. 옷도 사치스럽지 않고 나이 따질 것 없이 편한 차림으로 자유스럽게 살고 있다. 허례허식이 없어보여 보기 좋았다.

<썬텐드레, 예술가의 마을에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헝가리였다. 헝가리는 지금 개혁의 물결이 요동치고 있다. 공산 이데올로기가 무너지고 있는 동구권 국가 중에도 헝가리는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바로 그 현장을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제일 먼저 간 모스크바에는 고물 같은 버스나 승용차가 띄엄띄엄 다녔고 그 다음에 간 체코의 프라하에는 그보다 조금 많은 차가 다녔다. 육로로 국경을 넘은 오스트리아에는 프라하보다 많은 차가 있었다. 그러나 부다페스트는 반짝거리는 신형차들이 거리에 물결치는 것을 보고 차는 그 나라의 경제를 판가름하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로 유명한 부다페스트는 도나우강을 가운데 두고 부다와 페스트로 나뉘어 있다. 특히 내가 감동을 받은 것은 썬텐드레라고 하는 예술가의 마을이다.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 마을에는 진흙으로 빚는 여류 도예가 고바츠 마르키트 생가 박물관이 있다. 일생동안 결혼도 하지 않고 어머니와 살면서 오직 작품에만 매달린 그녀는 작품 속에 내면을 섬세하게 표출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큰 감동에 젖게 했다.
그녀의 작품 중에 어머니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모녀상이 있다. 어느 날 자기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 봤을 때 자기의 얼굴이 아닌 어머니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놀라서 자세히 보니 어느새 자기의 얼굴이 어머니의 얼굴로 변해 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를 끌어안고 “어머니, 나 어떡해”하고 오열했다고 한다. 슬픈 눈과 허탈한 표정이 잊을 수 없다.
또 하나는 헝가리 건국을 기념하기 위하여 1896~1926년에 걸쳐 완성된 영웅광장이다. 이 광장에는 헝가리 정부 건국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가 웅대하게 서 있다. 중앙에는 민족의 수호신 가브리엘 천사 동상이 말탄 기사들에 의해 에워싸여 있고 그 주변에는 헝가리의 정치가 장군등 유명한 건국인사가 나란히 서 있다. 나라의 큰 행사를 여기서 치룬다는데 바로 앞에 무명 용사들의 묘에는 시든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버스가 광장에 도착하자 헝가리의 대표적인 뜨게옷을 팔려는 여인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이번 여행에 참석한 문인들은 40대의 후반부터 80대 중반이다. 나이에 비해 20년은 젊어 보이는 분들도 있고 대부분 10년은 젊어 보였다. 많아야 70세로 보여 연세를 물어보면 80세 이상이다. 그분들의 젊은은 어디서 온 것일까. 글쓰는 생활이 늚음을 막아준 것일까. 연령에 차이없이 활기찬 모습으로 메모하며 여행하는 모습이 더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가끔 내 나이를 의식하면 아찔할 때도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많은 것을 깨우쳤다. 나이와 관계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나도 늦지 않았다는 것, 아직은 밖에 나가 누구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세상은 슬픈 곳이 아니라 즐거운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끝으로 황홀했던 마지막 밤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헝가리의 첫째밤은 “모차르트와 요한스트라우스 콘서트”를 관람했다.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국의 마지막 밤은 다뉴브강의 유람선에서 맞이했다. 식탁에는 촛불이 타고 막 해가 지고 난 강안에는 선홍빛 노을이 물들었다. 유네스코 문화재 보호 목록에 들어간 다뉴브의 야경이 차츰 생명을 얻어갔다.
감성이 여린 시인 작가들은 와인 잔을 마주치며 요한스트라우스의 다뉴브강 왈츠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정말 아름다운 밤이었다. 인생을 여행이라 비유하는 사람이 있다. 여행하고 있는 동안 되도록 즐겁고 기쁘게 살아야겠다는 상념이 노을에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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