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골목을 끼고 돌다가 애호박 하나를 보았다. 갓 깍아낸 듯 말끔한게 무척 정갈하다. 호박전 한 탕기를 부치고 싶은 마음에 팔라고 했더니 물끄러미 보고는 한 개 따서 건네준다. 곧장 집에 와서 부쳤다. 갓 딴 호박을 그것도 담을 통해서 건네받은 게 마중물이 되어 오랜 기억의 물꼬를 틀었다.

 별미라고 칼국수만 해도 이웃집에 돌렸다. 여름날 아욱죽이나 수제비 한 대접만 있어도 이웃집에 돌렸다. 호박 한 덩어리와 풋고추 한 대접의 찬거리도 담을 격해서 유통된다. 모처럼 사 온 자반고등어를 주려다가 빈집인 것 같으면 무너진 담을 넘어가서 들여놓기도 했다.

 얼마 되지 않지만 담 너머로 돌리는 인정은 갓 낳은 알처럼 따스하다. 이웃사촌이라는 해괴한 촌수가 만들어진 배경은 그렇게 훈훈했다.

 여느 때 틈틈이 건네주는 것 말고 날을 받아 돌리는 건 고사떡을 찌는 날이다. 시월 상달이면 햇곡식으로 마구설기를 쩌서 고사를 지낸다.

 언니와 함께 발이 부르트도록 돌렸다. 다니다 보면 다녀간 집을 또 들어가기 일쑤다. 음력설에 만두를 돌릴 때는 얼마 되지 않고 담 너머로 주기 때문에 그런 일이 없지만 고사떡인 경우 온 동네를 다니다 보면 아주 흔한 일이었다.

 피곤한 중에도 마음은 흐벅지던 게 생각난다. 담 너머로 먹거리를 주고받으면서 도타워지는 정분 때문이다. 식구라는 게 결국 한솥밥을 먹는다는 뜻이라면 이따금 한솥밥을 먹을 수 있는 의미는 각별했다. 식구라 해도 밥 해 먹는 솥이 다르면 멀어지고 남이라 해도 한솥밥을 먹으면 가까워진다. 이웃사촌이라고 말이 생긴 것 역시 한솥밥을 나눠 먹으면서 생긴 촌수라고 볼 수 있다. 매일은 아니지만 어쩌다 먹는 것으로도 정은 오갈 수 있다.

 이웃사촌이라는 해괴한 촌수의 배경은 어린 내게도 유리했다. 밤마을 다닐 때도 무너진 담 때문에 걱정되지 않았다. 나갈 때는 소리 안 나게 대문을 밀어두지만 들어올 때는 믿고 태연하다. 발각이 되어도 발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늦게 들어오는 잘못도 한 때의 과정으로 생각하면 크게 괘념할 건 아니다 결국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들어오는 여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요즈음의 단속이 잘 된 주택은 정문 말고는 없으니 들키는 게 안쓰럽다.

 좀도둑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해 오가는 인정이 더 큰 의미로 부각될 수 있는데 요즈음의 담은 이웃을 차단하고 있으니 걱정이다. 천금을 주고 이웃을 잃고 한 사람을 도둑을 물리다면 한 푼 때문에 열냥을 없애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잘 사는 집이라야 토담이 고작이고 생나무 울타리 아니면 그나마도 없는 집이 태반이다. 가난한 속에도 팥죽 한 사발 빈대떡 한 접시로 푼푼한 정을 나누었던 걸 생각하면 높은 담에 둘러싸인 채 얼굴도 모르고 사는 세태는 정말 유감스럽다.

 천금으로 이웃을 사듯 천금을 주고서라도 물리고 싶은 게 있다면 고향이고 인정이 아닐까. 옛날 어른들은 한 푼을 내 주고 천금짜리 이웃을 살 줄 아는데 우리는 한 푼이 아까워 천금 같은 이웃을 팽개치며 마음의 벽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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