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중

 2010년 봄, 4차선 도로에 자동차들이 달린다. 음성천 하천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문득 1980년 봄, 아침 8시 반경이 생각난다.

젊은 놈이라 그러지 매일 늦게 잠에 들고 아침에는 간신히 일어나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사무실과는 직선거리로 불과 150m, 가까운 거리지만 워낙 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대충 세면을 하면서 아침식사를 뚝딱 해치우고, 허둥지둥하면서 잠바를 입고 신사용 자전거를 타고 삼성면사무소(현재 삼성면 복지회관 자리에 있었음)로 출근을 서두른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아, 오늘도 다른 직원 분들은 거의 출근을 했다.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가볍게 인사를 했다. 늦게 출근하여 조금 민망스럽다. 제일 젊은 놈이 그것도 신삥이(공무원이 된지 10개월도 안됨 놈)제일 늦게 출근하다니, 더군다나 엎드리면 코앞에 닿을 거리인 가까운 거리에 사는 놈이 ...., 그러나 이미 일상이 되어 버려 모두 그러려니 한다.

오늘 아침에도 부면장님 주재로 직원조회를 한다고 부면장님 탁자 앞으로 모이라고 한다. 일장 훈시를 하신다. 오늘도 얼른 출장 가서 농민들에게 농사지도를 하라고, 직원조회가 끝나고 각자 담당마을로 출장을 간다. 자전거를 타고, 두서 명은 군청에서 대출을 받아 할부로 산 오토바이를 타고 출장을 가지만, 대부분 직원들은 자전거로 통근하고 또 출장 때 이용한다. 농장 행정 위주로 지방행정을 하다 보니, 봄철 농민들처럼 봄철이면 서기들도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농사행정 위주로 지방행정을 하다 보니 별의별 대장이 다 있다.

 볍씨 소독대장, 못자리 추진대장, 못줄 교환대장 (식량 증산을 하기 위하여 수확량이 많이 나오는 신품종 벼를 많이 심도록 못줄 간격이 넓은 6치 못줄을 4치 반짜리 못줄로 바꿔주는 대장, 당시 넓은 못줄을 거의 반강제적으로 빼앗고 짧은 간격의 못줄을 나누어 줬음),모내기 추진대장, 퇴비증산 지도대장, 병충해 방제 추진대장, 이삭거름 시비(施肥)대장, 벼 베기 추진대장, 추고수매 독려대장, 추경(秋景) 지도대장, 보리 파동 지도대장, 논두렁 소각대장…….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대장, 대장…….

 대장(臺帳)행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각설하고 …….

 내 담당마을은 상곡리다. 상곡리를 향해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그러난 반은 타고 반은 끌고 가야 한다. 비포장도로에 사리 부설도 안 되어 있는 도로다. 지금은 아스콘 포장이 잘되어 있어서 승용차로 다니지만 당시에는 좁은 비포장도로이기 때문에 자전거 체인커버에 젖은 흙과 마른 풀을 중간 중간 빼내야 한다,

 그래도 신난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도 풀 수 있고 가면서 들판의 농민들도 만날 수 있어 기분이 좋다.

 오늘은 볍씨 소독하는 것을 지도하러 상곡리로 가는 길이다. 볍씨소독 대장에는 농가명, 논의 면적 볍씨의 품종, 볍씨의 양, 볍씨 침종일자. 볍씨 소독약의 종류와 볍씨의 소독약의 양, 지도 공무원의 직 성명 등을 기재하게 되어 있다. 매일, 아랫증골,윗증골, 새터가 상곡리의 자연마을 이름이다. 이름도 나름대로 특색이 있다.

 집집마다 돌면서 볍씨 소독을 잘하고 있나 확인을 한다. 사실 농민들도 잘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공무원이 일일이 지도 점검하고 확인을 해야 했다. 저녁나절이 되어 다시 이장님 댁에 들렸다. 저녁을 먹고 가란다. 저녁상에 동동주도 올라왔다. 술도 맛있고 젊어서 그런지 술도 별로 취하k는 것 같지 않았다. 몇 주전자를 비우고서야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새벽, 깨어나 보니 아침 출근길이 걱정이다. 다행히 술 때문에 일찍 일어났지만, 상곡리와 면사무소는 십리도 더 되는 길이다. 아침식사도 드는 둥 마는 둥 하고 자전거로 출근길을 달렸다. 아홉 시 다 되어 가까스로 면사무소에 도착했다. 엊저녁 일은 잊은 채 아침 조회에 또 참석했다. 또 상곡이 담당 마을로 출장을 가란다.

 30년 전, 그때 그 아침 출근길이 오늘 아침에 문득 생각났다. 매연을 걱정하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빙그레 혼자 웃으면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는데, 까지 한 마리가 “까악, 까악”소리를 내면서 수정산 쪽으로 힘차게 날아간다. 내 마음을 아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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