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설희

 외갓집에서는 내가 첫 손녀였다. 아직까지도 남아선호 성향이 강하지만 내가 태어나던 시절에는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친할머니는 슬하는 아들 5, 딸 1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많으셨던 모양이다. 친가에서는 아빠가 둘째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큰아빠에게 큰딸이 하나 둘째는 쌍둥이 언니가 있었다. 그래서 모두 딸이 셋이었다.

 큰엄마의 넷째아기와 엄마의 첫째아기인 나는 같은 해에 임심을 하셨다. 그리고 큰 엄마 댁하고 우리 집은 같은 동네에 있었다. 산달도 같았던 모양이었다. 큰엄마가 먼저 오빠를 보니 어지간히 좋으셨던 모양이다. 딸 3명보고 아들을 보니 너무 기쁜 나머지 내가 태어났는데도 할머니는 딸이라고 보려 오시지도 않았다고 한다.

 엄마가 나를 낳고 서운했다는 말은 여태 한 적은 없지만 아마 그때 할머니에게 무지 서운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엄마가 나를 낳을 때는 한파가 와서 집에서 낳았다. 그때 나를 받아주신 할머니(지금은 돌아가셨지만)를 가끔 만나면 그때 설희를 받고 얼마나 이끌던지 하얀 피부에 입술이 너무나 빨개서 예뻤다고 한다. 나는 그 할머니가 좋았다. 세상에 태어난 나를 예쁘다고 한 것이 산파 할머니였다.

 친할머니는 아직도 네가 태어나서 예뻤단다. 하시지는 않는다.하지만 외할머니는 내가 첫 손녀여서 그런지 내가 아들은 아니어도 외갓집에 갈 때마다 참으로 예뻐해 주셨다. 외갓집에서는 항상 공주 대접을 받은 것 같다.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닌 모두 돌아가셨지만 가끔 방학 때 할머니 댁에 가면 할아버지 내가 사위라도 되는 양 집에서 키운 닭을 잡으셨다. (가끔 엄마 아빠와 가지 않고 삼촌이 데리고 간적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닭을 잡고 (닭을 줄일 때는 꼭 내가 없는 곳에서 죽이셨다. 그래서 나는 닭이 그냥 목만 살짝 건드리면 죽는 줄 알았다.)

 닭털 뽑는 것을 보면서 할아버지의 손놀림이 대단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잡은 닭을 맛있게 요리해 주셨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항상 있는 그대로 나를 예뻣해주신 외할머닌 참으로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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