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 전 음성교육장

무극(無極)과 금왕(金旺)

금왕읍의 읍소재지를 무극이라고 부르는데 무극의 인근에 있는 생극과 연관지어 세간에 그럴듯하게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무극(無極)은 금광 지대라서 지하에 금맥이 있으므로 나침반을 들고 있으면 극을 가리키지 못하여 무극(無極) 상태가 되므로 이곳을 ‘무극(無極)’이라고 부르며, 나침반을 들고 더 가다가 극이 생기는 곳을 ‘생극(生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자의 구성으로 보아 참으로 그럴듯한 이야기지만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않거니와 지명의 생성 과정에서도 타당성이 없는 것이다.

‘무극’이라는 지명의 어원에 대해서는 철학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태초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무극(無極)이라 하는데 지명을 만들 때 음성(陰城) 바로 너머를 무극(無極)이라 한 것은 이러한 무극설(無極說) 태극설(太極說)을 응용하여 음양설(陰陽說)과 풍수설(風水說)을 가미하여 이름을 만들게 되어 무극(無極)이라 하였으므로 우리나라 산천 고을 이름 중에 가장 으뜸으로 시작된 이름이라고 극찬하고 있기도 하다.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무극(無極)’이라 하였지만 나이가 든 주민들은 아직까지도 ‘무기’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어 ‘무기’에서 그 어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충주목지도(忠州牧地圖)」에 보면 ‘발산리’와 ‘무극리’가 병기(倂記)되어 있고「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무극리’가 없고 ‘발산리’가 있으며 「충주군읍지(忠州郡邑誌)」에는 ‘발산리’ 대신 ‘무극리’가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무기’란 냇가 벌판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지명이 아닌 지역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로 쓰이다가 지역 내에 있는 ‘바래미(鉢山里)’라는 마을이 주변으로 확산되면서 지역을 가리키는 ‘무기’가 지명을 대신하게 되었고 한자로 ‘무극((無極)’으로 표기된 것으로 짐작된다.

금왕(金旺)이라는 이름도 ‘무극’이 남한 최대의 금광 지역이었기 때문에 금(金)을 왕성하게 체굴한다고 하여 금왕(金旺)’이라는 지명이 생겨났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실제로 ‘금왕’이라는 행정 명칭은 조선시대에 충주목 ‘금목면(金目面)’의 ‘금(金)’과 ‘법왕면(法旺面)’의 ‘왕(旺)’을 따서 ‘금왕면(金旺面)’이 되고 1973년 읍으로 승격하여 ‘금왕읍(金旺邑)’이 된 것이다. ‘법왕면(法旺面)’이란 인근에 법왕사라는 절이 존재하였고 불교적인 용어로 만들어진 지명으로 볼 수 있지만, ‘금목면(金目面)’은 ‘금목동면(金目洞面)’이라고도 하는데 금왕읍 쌍봉리의 자연부락명 ‘쇠누골’과 연관지어 그 어원을 밝힐 수가 있다.

‘쇠누골’은 한자로 표기할 때 ‘쇠’는 금(金)‘으로 ‘누’를 ‘눈’으로 발음하여 목(目)’으로 적어 한자로 ‘금목골(金目谷)’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금목면(金目面)’은 ‘쇠누골’에서 온 말이며 삼성면 천평리의 ‘새누니’라는 지명도 ‘쇠누니’에서 그 어원을 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쇠누골’의 어원은 무엇일까? ‘벼라는 곡식이 열리는 풀’이라는 의미를 지닌 고어에 ‘쉬’라는 말이 있다. 벼농사가 시작되면서 ‘논골’(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이 생겨나고, 벼농사가 점차 확산되자 밭이었던 농지를 논으로 개간하면서 그 용도가 새롭게 바뀐 땅에 대한 이름을 지어 부를 필요성이 있어 ‘쉬논골(벼논골)’이 생기게 되어 이것이 ‘쇠누골’로 변화된 후 한자로 ‘금목(金目)’이라 표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금왕(金旺)은 ‘벼’의 고어인 ‘쉬’를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고을 이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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