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00년전 1800년경에 살았던 화가중에 지우제(之又濟) 정수영(鄭隧榮)이란 화가가 있다.
산수화를 잘그려 겸제 정선의 진경 산수화에 버금가는 작품으로 독특한 화풍의 좋은 작품을 남겼다.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오직 시서화(詩書畵)에 전념한 명문 출신의 화가로 팔십이 넘게 살았으면서도 남겨진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국립 박물관에 있는 「금강산도」그림은 그의 높은 화격을 잘 나타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십여년쯤 됐을까 서울 인사동에 있는 「학고제」에서 그의 소품을 만나 이내 반해 버렸다.
어렵게 작품을 구해 우리집 가보로 삼느라 꽤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애를 먹었다.
삼년전 6대를 살아온 터에 새집을 지으면서 안방 문위에 오동나무 조각으로 이름을 써 붙였다.
「지우제」한글 발음은 같으나 종이우산 이란 뜻의 紙雨濟로 누구든 잠깐씩 쉬어 갈 수 있는 방이란 뜻을 담았다.
비 오는날 종이우산 처럼 잠깐동안 이지만 유용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남쪽 제일 큰 방은 손님들의 방으로 사용된다.
평상시는 가족이 모여 텔레비전도 보고 식사도 하지만 늘 비워둔다.
지우제 그림은 오랫동안 걸어두고 봐도 싫증나지 않으니 좋은 그림이다.
특히 그림 중앙에 보일 듯 말듯 단숨에 그려진 산속 나무아래 바둑두는 두 사람은 자칫 평범해 질뻔한 산수화에 생기를 불어 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예술품을 사랑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평가한 전 국립 박물관장 최순우씨가 쓴 글에 “지우제는 이조화가 중에서 거칠고 성근 한국 그림의 특이한 체질의 일면을 가장 자연스럽게 창조해낸 귀한 작가이다.
그의 산수화에서 보여주는 그러한 체질은 그의 그림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무딘 붓으로 거칠게 그어내린 그의 선묘와 정묘등은 모두가 수선스러운 듯 싶지만 따지고 보면 그 나름의 야릇한 질서가 잡혀 있음을 알게 된다.”
를 봐도 지우제가 추구했던 우리것에 대한 사랑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다만 남아있는 그의 작품이 그를 이야기 하고 있을 뿐이다.
조선시대 선비화가의 향기가 그림으로 남아 창밖 대나무처럼 올곳게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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