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근

땡, 땡, 땡, 4교시 마지막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리고 국민학교 1학년 교실이 어는 순간 매우 소란스러워진다. 일주일에 한 번 돌아오는 옥수수 빵 배급을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주번인 나는 행여 조금이라도 늦으면 그 맛난 빵을 받지 못할까 봐 조급한 마음이 들어 친구들과 빵 배급 창고로 숨이 차도록 달려가야 했다.

배급으로 나오는 빵은 국민학교 1학년 학생 수보다 간혹 몇 개씩 모자라게 배급되는 날도 있곤 하영 우리의 눈은 빵을 나누어 주시는 용희자 선생님의 손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받아든 빵의 개수가 모자라지 않음을 확인하고는 의기양양하게 우린 반 교실로 돌아와 개선장군의 대접을 받곤 했다.

지금이야 그 거친 옥수수 빵을 어디 먹기나 하겠는가는 군것질 거리가 눈깔사탕도 감지덕지하던 1971년 초 그 시절 우리에게는 그 어는 것보다는 소중한 먹을거리였다.

옆자리 순호 녀석은 그 빵을 우걱우걱 참 맛있게도 먹고 있지만 나는 그 빵을 먹지 않았다 아니 먹을 수 가 없었다.

오늘은 빵이 배급된다는 것을 알고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여섯 살짜리 남동생 남근이와 그 빵이 맛있다고 부스러기까지 주워 먹던 4살배기 여동생 미영이가 집에서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 것 을 알기 때문에 차마 한입 베어 물지 못하고 집으로 곧장 가져가곤 하였다.

넉넉하지 못하였어도 그렇게 시골의 작은 마을 어는 집에선 올망졸망 모여 앉아 빵 파티를 하곤 하였다.

바람이 몹시 차게 불던 휴일 어느 날 이제는 중?고등학생이 되어 버린 우리 세 아이를 데리고 단양팔경의 하나인 하선암 입구에 섰다.

그렇게 그립던 지난날 빵 배급의 추억이 남아있는 그 초등학교를 찾아보지만 학교는 충주댐이 생김과 동시에 물속으로 사라져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고 국민학교에 입학하면 오빠처럼 빵 배급받아 같이 맛있게 나눠 먹자던 그 4살배기 여동생도 그 학교의 흔적과 함께 사라져 흐릿한 슬픈 추억으로 가슴에 남아 나를 가슴 아프게 한다.

휴게소에서 방금 사온 보드라운 빵을 큰 녀석 홍현이가 덥석 베어 물고는 나를 보고 웃고 있고 옆에서 아내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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