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영 섭 서양화가. 인성교육칼럼니스트

 
 

벌써 가을이 오고 단풍이 온 산하를 오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단풍을 감상하고 참살이를 위하여 국립공원 및 명승지에 행락객들로 붐빈다. 산하의 각종 나무들은 말없이 어울려 울긋불굿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이 사는 속세의 일상은 날마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난립하는 이슈들이 소통부재로 동맥경화에 아파하고 있다. 요즈음 국정교과서 문제로, 정치인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물고 뜯고 막말로 시끄럽기 짝이 없다.

또한 우리나라 굴지의 롯데 그룹도 형제와 측근간에, 학자들도, 교수들도, 교육자도, 지역사회인사들까지 우리사회는 날이 갈수록 세대간, 지역간, 계층간에 소통이 잘 안 되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왜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세태가 지속되는 것일까? 원인은 어려서부터 의사소통의 기본을 너무 무시하고 살아온 당연한 결과라 생각한다. 소통(疏通)이란 사물이 막힘이 없이 잘 통함을 말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가지 의미는 의견이나 의사 따위가 남에게 잘 통함을 의미한다.

의사소통은 사실, 신념, 생각 등을 전달하는 대화의 과정이다. 무엇보다 인간에게 의사소통의 으뜸이 되는 수단은 언어이다. 그 중요한 수단인 언어 즉 말(言)은 사람의 생각을 목청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다. 사람의 생각,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데 쓰는 음성 기호가 곧 말(言)이다. 이런 말은 긍정과 부정의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긍정적인 면은, 말 잘 하면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고, 상대방에게 존댓말을 써서 뺨 맞는 일 없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은, 말을 함부로 하거나 잘못 말해 숱한 갈등 사례를 초래한다. 말을 잘못하여 입게 되는 피해는 단순한 불이익을 넘어 말한 자의 신세를 망치거나 그 가족 또는 소속 조직까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짧은 세 치 혀가 사람의 목숨까지 좌지우지한 일까지 벌어진 역사가 숱하게 많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고 했다. 입으로 나온다고 해서 다 말이 아니고, 아껴서 좋은 것은 돈 만이 아니라 무심코 내뱉는 나쁜 말일 것이다. 나쁜 말은 입술에서 1초도 머물지 못하지만 상대방 가슴에는 비수가 되어 평생 머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한대마을에는 말무덤이 있다. 말(馬)을 묻은 곳이 아니라 말씀의 무덤인 언총(言塚)인것이다. 옛날 이 마을에는 다양한 성씨들이 살았는데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예방책으로 큰 구덩이를 파놓고는 서로에게 대한 미움과 원망, 비방과 욕을 모두 각자의 사발에 뱉어 이를 묻고 무덤을 만든 후로는 현재까지 싸우는 일도 없고 두터운 정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옛말에 ‘한 마디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지만 그 반대로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 했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입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언제나 귀는 둘이고 입은 하나다. 절묘한 비율이 아닌가! 경청의 전제 없이 하는 모든 말은 비판이든 칭찬이든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하였다. 이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도 ‘세치 혀의 무덤’을 하나씩 팔 때가 된 것은 아닐까. 허준이 쓴 동의보감의 한 구절을 되새겨 본다.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 통하면 아프지 아니하고 통하지 아니하면 아프다고 했다. 이제 올해도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 년말에는 온가족이, 온 마을이, 온 나라가 세대간, 남녀간, 지역간, 계층간, 여야간 화기애애한 소통의 꽃을 활짝 피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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