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숙

“~야 놀자.”

담 너머로 들리는 정겨운 친구들의 목소리에 하던 숙제를 팽개치고 곤두박질하며 달려가 해가 뉘엿뉘엿 서산마루를 넘어가는 줄도 모른다. 하나씩 둘씩 저녁 먹으라고 불려 들어가면 놀이판이 깨지던 그때 그 시절의 놀이를 두서없이 나열해 본다.

“퐁당퐁당” 돌을 던져라……. 노랫소리에 맞추어 ‘나풀나풀’ 고무줄 튀기며 맨발로 고무줄넘기를 할라치면 어디서 나타나는지 개구쟁이 사내애들은 면도칼로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곤 한다.

신작로나 개울에서 동글동글한 조그만 돌을 치마 가득 모아 놓고 공깃돌 따먹기 놀이, 땅위에 선을 긋고 땅뺏기 놀이, 납작한 돌을 주워 땅바닥에 선 긋고 비석치기 놀이 , 남자 아이들은 자치기, 사방치기, 유리구슬 놀이, 딱지치기…….

두 사람이 양쪽에서 긴 줄을 돌리고 나머지 아이들은 줄을 서서 하나씩 차례로 줄을 건드리지 않고 줄 속으로 들어가 다 같이 박자에 맞춰 줄을 넘으면 우리는 목청 높여 “꼬마야 뒤로 돌아라.”를 불렸고 봄이면 개울가에 버들강아지 꺾어 놀고 버드나무가지 비틀어 풀피리 불며 돌아다니고, 여자들은 냉이며 달래며 꽃다지 캐러 다니고, 진달래 철쭉 꺾으러 이산 저산 뛰어다니고 할미꽃 따서 아카시아 가시에 꽂아 놀고 감꽃(열매) 주어 실어 꿰어 목걸이, 팔찌 풍성하게 걸고 다니면서 깨어진 사기 조각을 주워 호박잎을 따서 엄마놀이 할 때 어린 동생은 베개 둘러업고 조금 커서는 어린 동생 등에 업고 친구놀이에 함께 했었다.

아카시아 잎 가위, 바위, 보로 떼어내기, 잔디 씨 뽑아 대궁 쪽 훑어 맺힌 물방울로 쌈하기, 여름에 장마 진 뒤 뻘건 흙탕물 속에서 남자 아이들은 벌거벗고, 여자 아이들은 고무줄 팬티 입고 물속에서 물장구치고 물 튀기는 쌈하고 돌 수제비하고 수영하고 물속을 달리기도 하고 모래 놀이를 할 때면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를 했었다.

가을엔 볏짚을 쌓아 놓은 넓은 논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는 술래에게 들키지 않게 한 발짝씩 술래 가까이 다가갔고 무등타기, 굴렁쇠 놀이, 묵찌빠 놀이, 모자를 거꾸로 쓴 남자 아이들의 기마전 놀이는 씩씩한 국군들 못지않았다.

겨울이 오면 눈싸움, 비탈진 언덕에서 눈썰매 타기, 물 논에 얼음이 얼면 얼음지치기, 스케이트 타기, 명절엔 널뛰기, 윷놀이, 씨름하기, 그네뛰기, 화투하기, 강강술래, 수건돌리기, 정월 대보름 전날엔 개불 놀이, 쥐불놀이, 편쌈하기, 고사 지낸 자리 따라 다니며 동전 줍기, 집집마다 몰려다니며 밥 얻어 디딜방앗간에서 낄낄거리며 밥 먹기 언니들과 같이 쌀이며 반찬거리 모아 밥해 먹기, 휘영청 달 밝은 밤에 술래잡기는 지금도 짜릿한 스릴을 느끼게 한다.

“꼭꼭 숨으라. 머리카락 보일라.” “술래가 찾는다.”를 외치면 둘셋 짝을 지어, 꼭꼭 숨으면 술래는 무서워 찾지 못하고 술래 기둥 가까이서 서성거렸다.

늘 서던 5일장엔 바다가 없는 우리 고향에선 냄새 나는 생선(오징어, 고등어, 꽁치, 생태)이 밥상 위에 올라오면 형제들의 밥숟가락은 어른들 주먹만 했다. 헌 부대 종이에 돌을 지푸라기로 싸서 길에 던져두고 몇 명이 함께 숨어 보면 비틀거리는 술에 취한 행인이 주워가기라고 하면 꼬마들에겐 신나는 이야깃거리였고, 개구쟁이 사내들은 소 장수가 다리 밑에 묶어 둔 황소 뒷다리 울음소리와 후다닥 낄낄거리며 도망치는 사내아이들.....

끈 달은 빈 깡통에 헌 고무신을 담아 놓고 불 붙여 돌리며 노는 그들의 얼굴에 영락없는 숯검뎅이 자국이 이마며 눈코 주위에 자리 잡고 땅바닥을 기며 놀고 흙 찍어 먹고 맨발로 뛰어 놀고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놀았어도 아토피도 없고 건강하고 즐거웠던 그때 그 시절의 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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