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 전 음성교육장

  절골과 한절우

  음성 지역에서 ‘절골’이란 지명을 찾아보면 음성읍 용산리를 비롯하여 금왕읍 유포리, 감곡면 사곡리, 상우리, 원당리, 대소면 내산리, 대풍리, 맹동면 쌍정리, 인곡리, 생극면 도신리, 병암리, 팔성리, 원남면 하로리 등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다.

이와같이 전국의 지명에 ‘절골’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많이 쓰이고 있는데 한결같이 그 음을 따라 옛날에 절이 있던 골짜기라고 해석하고 있고 또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전해져 왔다.

그런데 역사 기록을 보면 신라 시대에 우리나라에 전해진 불교가 고려 시대에 전성기를 맞고 조선시대에는 유학을 숭상하면서 불교가 번창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마을의 골짜기마다 절이 있었다고 보기에는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궁금한 마음에서 절골이라는 말의 뿌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삼성면 양덕리에는 ‘한절우’라는 마을이 있다. ‘한절우’는 동서로 나뉘어져서 동리한절우, 서리한절우로 불리는데 그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하므로 발음하기 쉬운 대로 ‘동리한자루, 서리한자루’라고 하기도 하며 지역사람들은 아예 한절우를 빼고 ‘동리, 서리’라는 이름으로 마을 이름이 굳어졌다.

지역에 전해오는 말로는 옛날 고려 중엽에 찬란한 불교 문화가 꽃피웠던 때에 이곳 동쪽과 서쪽에 각각 큰 절이 있었는데 동쪽에 있는 큰 절 뒤에 있는 마을을 ‘동리한절후(-後)’라고 하고 서쪽에 있는 큰 절 뒤에 있는 마을을 ‘서리한절후(-後)’라 했다고 한다. ‘한’이 ‘크다’는 의미이므로 큰 절의 의미로 보아 ’서리(西里)‘를 ’대사리(大寺里)로 한자표기가 된 것이다

그런데 한절우는 마을에서 한절울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보아 ‘우’는 마을이라는 의미의 ‘울’일 것이다. ‘한절’이라는 고유어에는 고유어인 ‘울’이 붙어 쓰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지 한자어인 ‘후(後)’가 붙어 쓰인다고 보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다만 뜻을 모르는 상황에서 ‘우’와 비슷한 음을 가진 한자 ‘후(後)’를 써서 그럴듯한 의미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 ‘절’의 의미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는 한절골과 한작골이라는 이름이 혼용되고 있는 보은 내북면 도원리와, ‘한적골’을 大寺里로 한자 표기한 삼성면 대사리, 그리고 생극면 차곡리의 ‘작은적골’에서 커다란 단서를 얻을 수가 있다. 즉 한절골은 한작골에서 음운변이 되었으며 한작골은 한잣골에서 온 말이다. ‘잣’은 ‘산’이라는 의미로서 ‘고개’라는 의미로도 많이 쓰이고 있는데 지명의 명명에서 그 빈도가 매우 많은 구성 요소이며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의 지형에서는 당연한 일인 것이다.

따라서 ‘절골’은 ‘잣골’이 어원으로서 ‘산골짜기’라는 의미임을 짐작할 수 있으며 한절골은 ‘큰 산골짜기 마을’이라는 의미로 보면 지형이나 지명 명명의 유연성이나, 음운 변이의 과정으로 보아 모든 궁금증이 한꺼번에 속시원하게 풀리게 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절골이라는 지명의 어원이 모두 ‘잣골’인 것은 아니다. 지명 중에는 실제로 절이 있는 골짜기라서 ‘절골’이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된 곳도 분명히 있고 큰절이 있어서 ‘한절골, 한절울’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곳이 있을 것이다. 이들이 서로 혼용됨으로써 구별하는데 혼란을 겪게 되므로 지명의 어원은 항상 추정할 뿐이지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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