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훈

레테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잊혀졌던 기억들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다시 피어오른다. 지금 내 이야기가 다시 내 자식의 이야기로 거듭 태어나는 것처럼 오늘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를 기억한다.

흑백필름이 날숨과 들숨을 반복하며 돌아가고, 영사기가 과거의 기억들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1960년대 부뚜막 아궁이의 불꽃이 아버지의 눈물을 태우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신 할머니 영정 앞에 그 강하고 말없던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다. 나에게 한 없이 엄격했던 아버지는 초라한 허수아비처럼 외롭고 애처로웠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아니 기억된 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아버지는 보릿고개를 기억하고, 난 검게 그을린 고구마를 추억한다. 아버지의 기억에 따르면, 아버지는 어린시절 할머니와 함께 보릿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무슨 산 이름이 그렇게 거창한지, 초등학교 다니는 나에게 있어, 그 산은 언제나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든든한 라면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아버지를 지금도 넘기 힘든 커다란 산이었다고 소주 한잔 한잔에 보릿고개를 담는다. 아버지의 초등학교 흑백 사진에는 빼빼마른 내가 있었고 나의 초등학교 졸업사진에는 언제나 무지개 빛 보리빵이 있었다. 그런 이유였을까. 당시로써는 아버지의 흑백사진 속 풍경은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결국, 나에게 아버지와 보릿고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수수께끼였을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 수수께끼를 어렴풋이 풀었지만 그 시절의 어린 아버지와 돌아가신 할머니를 내 맘속에서 지웠던 나는 검게 타 버린 고구마를 통해 다시 아버지를 추억하려 한다.

부뚜막 아궁이 속 고구마는 향기로운 냄새로 나를 유혹했고 먹고 싶어 안달이 났던 나를 말리는 할머니의 부지깽이는 타버린 나무 속 나를 신경질적 아이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할머니의 거칠어진 손은 그리운 누군가를 위해 고구마를 검붉게 괴롭혔고, 풍구로 인해 돋아난 바람은 달콤한 냄새를 내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 했다.

드디어, 검게 그을린 못 생긴 고구마를 한입 베어 물고 나는 함박웃음을 지었고 할머니의 손은 검은 재로 인해 더더욱 고고해졌다.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그리고 나에게 고구마를 구워주었던 그리운 고장 음성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나는, 이제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그리움으로 돌아가신 할머니와 어린시절 아버지를 기억하며 살아간다.

나를 기억했던 할머니는 현재 나의 곁에 없지만, 그 시절 고구마의 향기와 함께 풍구의 바람 따라 나에게 다시 다가오고 있다. 아마도 할머니가 나에게 고구마를 구워주셨던 그 시절의 주름처럼 늙어버린 아버지도 나의 자식에게 고구마를 구워 주시려 할지 모른다.

아버지의 어머니를 추억하며.....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