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동면 봉현2리

맹동면 봉현2리 봉암마을 전경.
맹동면 봉현2리 봉암마을 전경.

맹동-대소간 515 지방도 도로변에 세워진 봉암마을 표지석.
맹동-대소간 515 지방도 도로변에 세워진 봉암마을 표지석.

금왕-진천간 21번 우회도로를 빠져나와 속도를 늦춘다. 맹동-대소간 515번 지방도에 내려선다. 11시 방향으로 ‘봉암’마을을 가리키는 백색 표지석이 기다리고 있다. 표지석 지시를 따라 S자로 휘어진 길을 따라간다. 펼쳐진 들판에 하우스가 빼곡하다. 한천 앞 비닐하우스에선 수박을 키우느라 주민들이 분주하다. 멀리 북서쪽으로 뒷산이 둘러싼 마을이 건너다 보인다. 도로옆 우뚝 선 태양광시설이 마을 전경을 막고 말았다. 동네엔 빈집을 지키며 주인 손길을 기다리는 닭이 홰를 치고, 개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야말로 봉암마을은 여유있고 평화로운 농촌 마을이었다. 기자는 독자들을 맹동면 봉현2리(이장 정일헌), 봉암마을 이야기 속으로 초대한다. -편집자 주-

봉암마을 입구에 선 바위에 새겨진 태극문양과 '재건'이란 글자가 남아 있다.
봉암마을 입구에 선 바위에 새겨진 태극문양과 '재건'이란 글자가 남아 있다.

◆ 새와 바위가 많은 동네

봉암마을의 행정명칭인 봉현리 지역은 본래 충주군 맹동면에 속했었다. 지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신계리(新溪里), 개현리(介峴里), 봉암리(鳳岩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봉암과 개현리(개오개)에서 각각 한 자씩을 따 ‘봉현’(鳳峴)리‘라 이름 지어졌다.

현재 봉암마을엔 50여 가구에 130여 명 주민들이 터전을 가꾸며 살고 있다.

자연부락인 봉암마을 명칭은 마을 입구에 서있던 거대한 바위와 한천에 황새를 비롯해 각종 새들이 많이 살았던 것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새와 바위’가 많은 마을. 그러나 현재 마을 앞에 있던 큰 바위는 그동안 진행된 몇 차례 도로 공사와 마을 개발 정비사업을 거치며 크기가 몰라보게 작아졌다. 또한 들판마다 하우스가 들어서며 먹이를 찾아 날아들던 새들도 자취가 끊겼다. 하지만 봉암마을은 수년 전 상수도 공사를 하며 땅을 파 본 결과 마을 전체에서 암반이 발견되는 한편, 마을 앞 하우스엔 오리와 닭을 키우는 농가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또 다른 의미의 ‘새와 바위’가 많은 봉암마을이 됐다고 정일헌 이장은 의미를 부여한다.

봉암마을 앞 들판을 비옥하게 적시는 한천 모습.
봉암마을 앞 들판을 비옥하게 적시는 한천 모습.

◆최초 농지정리.하천정비로 영농 현대화 이뤄

대대로 봉암마을 주민들은 마을 앞으로 펼쳐진 드넓은 들녘에서 거둬들인 품질좋은 농산물로 인해 비교적 부유한 삶을 살아왔었다. 특히 봉암마을은 맹동면에서 최초로 상수도 시설이 들어왔으며, 1965년 농지 정리 사업과 이어진 마을 앞 하천정비 사업 역시 음성군 최초라는 기록이라며 주민들은 뿌듯해한다. 이같이 상수도, 농지와 하천정비가 일찌감치 진행됨에 따라 봉암마을 주민들은 지역에서 수박을 비롯한 특용작물 재배를 선도했다. 나아가 오리와 닭을 키우는 주민들이 많아지면서 봉암마을은 음성군을 넘어 충북에서도 가금류 사업의 메카로 하루빨리 자리를 잡게 됐다.

수년 전 상수도 공사를 통해 확인한 것처럼 마을 전체가 암반이라서 그런지 물 빠짐도 좋고,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 깨끗하고 단 지하수는, 풍부한 일조량과 함께 마을 주민들이 생산한 수박은 맹동수박 중에서도 최고의 품질을 보증한다고.

마을회관 앞에 세워진 안영호.장장성 님 보은 송덕비.
마을회관 앞에 세워진 안영호.장장성 님 보은 송덕비.

◆안병일 초대군의장 등 인재도 많아

예로부터 부유하고 넉넉한 봉암마을 주민들은 인재양성에도 남다른 열정을 가졌었다. 그래서 봉암마을엔 지역과 사회에서 활동한 인재들이 손으로 꼽을 수 없을만큼 많다. 음성군 공무원으로 맹동면장을 역임하고 몇 년전 퇴직한 김병혁 전 면장도 봉암마을 출신. 김 전 면장은 지금도 마을에 있는 하우스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교육계에선 정덕헌 씨가 무역.경제학 박사로, 이관숙 씨 역시 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정일헌 이장 친동생 원헌 씨는 롯데그룹 상무로 재직하며, 제계에서 입지전적인 활동을 펼쳐가고 있다. 봉암마을이 배출한 인물 가운데 빼놓을 없는 이는 안병일 초대 음성군의장이다. 안병일 전 의장은 전국 최초로 농지정리, 관개시설 정비 사업을 봉암마을에 유치하여 영농 현대화에 큰 공로를 세웠으며, 맹동농협 설립을 주도했다. 초대에 이어 4대 음성군의회 의장을 지내며 군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안 의장은 대통령상 등 각종 포상을 받기도 했다.

특히 마을 회관 앞에는 회관 부지를 마을에 희사한 안영호.장장성(안병일 전 의장 부모) 님 보은송덕비가 세워져 봉암마을이 충효의 전통과 교육으로 인재양성의 마을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봉암마을 회관 전경.
봉암마을 회관 전경.

‘골밭, 큰말, 갈모랭이....“ 봉암마을 구석구석에 붙여진 자연부락 명칭이다. 마을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취재를 마쳤다. 개오개 방향으로 갈모랭이를 돌아 마을을 빠져나오는 데, 조성된 지 얼마 안된 무덤과 시비가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기자는 그제야 숨을 돌리며 ’고향생각‘이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3연 9행의 정형시를 읽는다.

“풀벌레 울음소리 풀끝에 구슬 걸 때 / 동창에 우리는 해 올려 미는 함박산 / 홰 치는 장닭 울음에 새 아침이 열리던 곳....” 노곡(蘆谷) 조성국의 시, ‘고향생각’ 중에서--

 

/우/리/동/네/사/람/들/

 

정일헌 이장

편안하고 여유있는 스마일 이장님

정일헌 이장.
정일헌 이장.

만날 때마다 편안하고 여유넘치는 정일헌 이장은 ‘스마일 이장’이다. 2008년부터 9년째 마을 이장을 보면서 맹동면이장협의회장으로 지역발전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정 이장. 사실 초대 맹동면이장협의회장을 지낸 선친(정석)의 뒤를 이어 부자가 마을 이장과 맹동면이장협의회장을 역임한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올해 여든인 노모(장기명 옹)를 모시고 사는 정 이장은 부인 이미옥 씨와 1남2녀의 자녀가 가족이다.

오리농사를 지으며, 수박농사를 조금 짓고 있다는 정일헌 이장. “마을 주민들이 화목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피력하며, “또한 마을 발전을 위해 이장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정복수 노인회장

"건강하고 화목한 봉암마을 전통 이어가도록 노력하겠다"

정복수 노인회장.
정복수 노인회장.

“대대로 봉암 마을은 노인회원들을 비롯해 주민들 모두가 건강하고 화목한 마을로 소문이 난 곳”이라고 말하는 정복수 노인회장. 주말과 휴일이면 찾아온 아들들과 함께 수박농사와 논농사를 짓고 있다.

부인 김봉님 씨 사이에 아들만 셋을 둔 정복수 노인회장은 “아들들이 건강하고 우애가 좋은 모습을 볼 때마다 기쁘고 고맙다”고 말한다.

통동저수지가 건설되며 고향을 떠난 정 노인회장은 비교적 고향 가까운 곳인 봉암마을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고.

50여 명 넘는 노인회원들과 주민들에게 “이제 본격적인 농사철 한창 바쁠때다. 모두들 건강하고, 큰 소득을 올리기를 바란다”고 정 노인회장은 인사했다.

 

한미경 부녀회장

"마을 일과 집안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알뜰 살림꾼"

한미경 노인회장.
한미경 노인회장.

‘응답하라! 1988~’ 88서울 올림픽으로 전국이 들썩일 때, 서울에서 음성군 맹동면 봉암리로 시집온 여성이 있다. 바로 한미경 부녀회장 얘기다.

수박농사를 비롯해 오리. 닭까지 키우고 있는 서울댁 한미경 부녀회장. 올해 2년째 부녀회장으로 마을 일과 집안 일, 농사까지 안팎으로 주어진 많은 일에도 항상 최선을 다하는 그녀는 그야말로 알뜰 살림꾼이다.

남편 이문숙 사이에 1남 5녀의 자녀를 둔 한미경 부녀회장. 정말 88년 결혼한 세대치곤 보기 드물게 많은 자녀를 둔 애국자(?)다.

한 부녀회장은 “부녀회원들이 건강하고, 정이 많고 평안한 마을을 만드는 데 작은 힘이지만 최선을 다해 일할 것”이라고 환하게 웃는다.

마을회관 앞에 세워진 정자가 생활의 여유를 즐기라고 하는 듯 하다.
마을회관 앞에 세워진 정자가 생활의 여유를 즐기라고 하는 듯 하다.

봉현보건진료소 모습.
봉현보건진료소 모습.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