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섭 해오름학원 원장, 수필가

 

 
 

예부터 물이 흐르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그 물로 농사를 짓고 밥을 하고 빨래를 하였으며, 흐르는 물에 멱을 감고 발을 담그고 물고기를 잡았다. 생업과 유희가 하천의 물과 함께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산업화와 도시화는 우리의 삶의 양식을 바꾸어 놓았고 하천은 오염되었으며 우리는 더 이상 그 곳에 즐겨 머물지 않게 되었다. 장마 대비와 관개를 위한 치수 사업이라 하여 물길을 직선화하고 시멘트로 천변을 바르고 개천 바닥을 긁어내는 일을 반복해 왔다. 그 결과 수많은 동네 개천들은 반갑지 않은 냄새를 풍기며 그냥 흐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더 이상 개천에서 놀지 않는다.

지난여름 음성천변을 걷다가 작은 물고기들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아이들에게 작은 어항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에 바지를 걷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작은 물고기들을 쫓는 재미에 옷이 젖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한 시간을 놀고 물가로 나오는데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 조금은 쑥스러웠다. 개천에서 그러고 있는 게 아마 나 혼자였나 보다. 그 다음날 허벅지와 종아리에 난 붉은 반점들을 발견하고 그 시선들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봉학골에서 발원한 음성천은 읍성 읍내를 관통하고, 응천은 금왕 한복판을 지나 생극까지 이어져 흐르며, 미호천은 대소면을 지나고 오갑천은 감곡 읍내의 옆구리를 끼고 흘러간다. 우리 음성지역은 이렇게 흐르는 물가에 자연스럽게 삶터를 자리 잡아 왔고 그곳에서 면면히 삶을 이어왔다. 하지만 그 귀중한 개천들은 이제 관리의 대상일 뿐 우리가 즐겨 찾고 가고 싶어 하는 장소는 아니다.

지척에 있는 개천은 버려두고 좋은 경치를 보려고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멀리 찾아다닌다. 서울의 청계천에 가서 발을 담가보고 등불축제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었다고 자랑삼아 말하는 사람은 있지만 음성천에서 그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

읍내를 관통해 흐르는 물에서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고 연인들은 웃음 가득한 사진을 찍고, 중년들이 물가 벤치에서 편안한 대화를 나누고 노인들은 흥겹게 천렵을 즐기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개천은 우리 삶에 다시 가까워지고 맑은 숨을 쉬는 장소로 되돌아오게 된다. 물과 인간의 즐거운 공존이 회복되는 것이다.

하천을 자연친화적으로 정비하는 장기적 전망과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천의 연간 물 유입량과 계절적 변동 및 주변 오염원을 면밀히 살피고, 하천 바닥과 제방에 대한 역학 조사, 그리고 하천 생태계에 대한 종합적 관찰, 다른 지역의 모범적 사례에 대한 조사를 선행해야 한다.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친환경적으로 하천을 되살릴 방안을 결정하고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추진할 기구를 설립하여야 한다. 하천을 되살리는 사업 자체가 생활환경의 개선뿐만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와 인구 유입의 효과도 발생시킬 수 있다. ‘맑은 물이 시내를 흐르는 깨끗한 지역’라는 이미지는 음성의 위상 제고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우리 이제 맑은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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