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 정 수필가

 
 

어느 날 아침, 아파트의 창문으로 활짝 핀 목련이 불쑥 들어서고 있다. 봄을 가슴 가득 안고 거실 안으로 사풋사풋 나비춤을 추고 온다. 하얀 버선발을 사푼 내디디며 한바탕 춤사위를 풀어놓으면 뒤질세라 이어 터지는 꽃망울들. 개나리도 진달래도 춘무(春舞)의 대열에 끼어든다. 꽃들은 용케도 제가 필 때를 알아서 피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어기지 않고 피어날 때를 알고 질 때를 안다.

국회의원 선거로 떠들썩했던 요즘이다. 상대방의 단점을 캐내어 서로 할퀴고 물어뜯고 자신의 장점만을 내세우면 좋으련만 경쟁자를 비방하는데 더 열을 올린다. 내겐 국민들에게 자신을 어필하기 보다는 경쟁자와 싸우느라 더 바빠 보였다. 상대의 약점을 드러내서 내 약점을 감추느라 급급하다. 법적 선거유세기간인 13일은 짧은 시간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노라 알리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남의 이야기에만 다 쏟으면 국민들은 누구를, 무엇을 보고 선택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국민들은 선거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누가 나왔는지도 모른다. 모든 시험이 60점을 넘어야 합격이지만 이번 20대 총선은 전국평균 투표율이 58%에 지나지 않았다. 단지 귀찮아서 투표를 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서 받아온 실망 때문이지 싶다. 공약은 약속이 아닌 반짝 구호에 불과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지난 19대 보다는 조금 오르긴 했지만 갈수록 선거의 참여율이 낮아지는 것에 대해 정치인들은 반성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남이 아닌 내가 주체가 되어 나를 알리는 유세를 듣고 싶은 것이다. 공약은 내세우기 위한 외침이 아닌 지켜야하는 국민과의 약속이다. 그걸 지키려고 노력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쉬운 것이다. 선거 때만 잠시 동안의 을(乙)이 되는 후보가 아닌 선거가 끝난 뒤에도 국민들을 갑(甲)으로 대우해주는 사람을 보고 싶은 것이다.

꽃이 피고 지듯이 사람도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알면 얼마나 좋으랴. 현재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은 내려오지 않기 위해 새로 올라가려는 사람은 올라서려고 야단법석이다. 정치인들은 정년이 없다지만 6선 7선을 해도 자꾸만 더 욕심을 부린다.

김옥길여사가 이화여대 총장으로 있을 때 갑자기 사표를 냈다고 한다. 주위에서는 간절히 말렸으나 굽히지 않았다. 누군가가 사석에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언제부터인가 내게 바른말을 해주는 사람이 미워지고 싫더란다. 비난이 아니라 비평을 하는데도 싫다면 내가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지금이 바로 물러나야 할 때구나 해서 그만두었다고 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용기 있는 낙화인가.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끌려 들어온 바람이 이병기님의 “낙화”를 온 집안에 낭랑한 낭송으로 풀어 놓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봄, 자연이 역행하지 않고 제 모습을 보여 주듯이 유권자는 정당한 유권자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또한 정치인은 정치인의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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