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종 렬 전 음성교육장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맛 향기를 지닌다.// 문병란의 ‘희망가’란 시(詩)의 일부분이다.

오리는 태어날 때 알 껍질을 깨는 고통의 과정을 겪어야 만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 알 깨는 것을 도와주면 그 오리는 몇 시간 못 가서 죽는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시련이 있어야 윤기가 나고 생동감이 있게 마련이다.

남태평양 사모아 섬은 바다거북들의 산란 장소로 유명하다. 봄이면 바다거북들이 해변으로 올라와 모래 구덩이를 파고 알을 낳고 깨어난 새끼들이 바다를 향해 새까맣게 기어가는 모습은 가히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한 번은 해양학자들이 산란기 바다거북에게 진통제를 주사해 보았더니 거북은 고통 없이 알을 낳았다. 하지만, 거북은 자기가 낳은 알을 모조리 먹어 치워 버렸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고통 없이 낳은 알이라 모성 본능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어떤 알콜 중독자가 있었다. 술과 노름 등 방탕한 생활로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는 그에게는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가 버린 아내가 있었다. 그리고 남겨진 두 아들이 있었다. 두 아들은 이와 같이 형편없이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자랐다. 가출한 어머니, 술주정뱅이 아버지, 그야말로 부모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20년 후 두 형제의 인생은 완전히 갈리고 말았다. 한 아들은 의과 대학의 저명한 교수가 되어 알콜 중독자들을 치료하며 '금주운동'을 펼쳤고, 다른 한 아들은 아버지처럼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폐인이 되었다.   한 아들은 비극적인 환경을 교훈 삼아 나는 결코 그런 길을 걷지 않겠다는 결단으로 희망의 삶을 개척했지만, 다른 한 아들은 자신의 여건에 대한 불평, 불만 속에 환경 탓만 하다가 자포자기로 인생을 망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만약 밝은 대낮만 계속 된다면 사람들은 며칠 못 가서 다 쓰러지고 말 것이다. 누구나 어둠을 싫어하지만 어둠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낮도 밤도 모두 우리 삶의 일부인 것이다.

누구나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대하고 희망한다. 그러나 어둠이 있어야 빛이 더욱 빛나듯 시련이 있어야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은 눈이 멀었음에도 ‘실낙원’이라는 역작을 썼고, 뉴턴은 절름발이였음에도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으며,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은 상황에서도 불후의 명곡을 남겼다.

르누아르는 양손이 관절 류머티즘에 걸렸지만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고, 모차르트는 막대한 빚을 진 채 병마와 싸우면서도 ‘레퀴엠’의 마지막 곡과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슈베르트는 평생 가난에 허덕이며 32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많은 명곡을 남겼다.

헨델은 죽음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손발 저림이 찾아왔을 때 절망감과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메시아’라는 명곡을 작곡했고,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를 당하면서도 인문학 박사, 법학 박사의 칭호를 받고 한평생 장애인들을 위해 지칠 줄 모르는 봉사를 했다.

고통과 시련은 삶의 일부분이다. 돌멩이가 항아리 위에 떨어져도 항아리의 불행이고, 항아리가 돌멩이 위에 떨어져도 항아리의 불행이다.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시련과 고통은 해가 뜨고 지는 것만큼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것을 도약의 기회로 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절망의 늪에 빠져 버리는 사람도 있다. 인생은 울퉁불퉁 가시밭길이다. 위기를 만날 때. 기회를 찾았을 때. 길을 잃었을 때 이정표가 되고 빛이 되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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