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덕

70년대 새마을산업이 시작되어, 읍면에 기술(토목)직 공무원이 배치되던 그때, 어렵사리 토목직 5급 (현 시설9급)공채시험에 합격하여 그해 가을 금왕읍 건설계로 초임발령을 받아 근무하였다.

집에서 학교까지 15리 길을 자전거로 또는 1111호라고 하는 걸어서 통학하던 학생 신분에서 사회를 처음으로 접하니, 금왕읍의 지형과 지리도 모르고 어리벙벙한 상태였으나, 학교선배 한 분이 같은 계에 근무하여 하숙집 등 모든 일을 안내해 주며 살았던 공직 처음 그 시절이다.

그 해 연말은 선거와 연관하여 음성군 전 마을마다 1건 정도의 사업비(지금은 주민숙원사업)가 12월에 예산이 편성되어, 겨울철에 설계를 마치고 해빙과 동시 착공하도록 지시되었다.

그 당시 건설과 토목계에서 군, 읍면 토목직공무원을 지금과 같이 합동 측량 설계반을 편성하여, 조별로 차량을 배차 받아 마을별로 순회하며 측량하던 그때 군에서 지원하는 차량은 에이스 1톤 차량 1대와 6.8톤 덤프 2대가 이동 수단의 전부였다.

조수석은 군청의 조장이 타고 화물 적재함에는 측량기와 우리 조원이 탑승하여 낮에는 현장에서 조사측량을 하고 밤에는 음성에 있는 여인숙에서 도면작업을 하던 공직초년 시절에, 여러 가지로 열악했던 합동 설계반의 설계 내역서 작성시 토목계 차석이 사용하던 수동식 계산기를 처음 보았다.

그 시절에는 상고출신은 주판으로 가감승제를 하였지만, 우리 토목직은 주판을 못해서 종이에 연필로 계산하여 내역서를 꾸미던 시기였다.

그러나 토목계 차석이 사용하던 수동식계산기는 곱셉과 나눗셈만 가능했지만, 내역서 작성의 곱하기와 나누기는 아주 쉽게 앞으로 또는 뒤로 돌려가며 계산해서 설계하는 것을 보고, 지금의 컴퓨터만큼이나 신기하고 사용해 보고 싶었던 기계, 수동식계산기 신기한 물건이었다.

사용 방법의 예를 들면, 52,370곱하기 975를 하려면 먼저 52,370을 자리단위별로 숫자를 고정하고, 곱할시 백 단위에서 9번을 앞으로 돌리면 마지막 9번째에 땡하고 소리 나면 십 단위로 한 칸 이동해서 7번 땡 할 때까지 돌리고, 단 단위로 한 칸 이동해서 5번을 돌리면 은행의 과거 수표 발행기마냥 계산 값이 51,060,750이 나오며, 나눌 때에는 곱하기와 같이 숫자를 고정하고 반대로 백 단위부터 돌리는데 뒤로 숫자만큼 돌리고 십 단위로 한 칸 이동하여 숫자만큼 뒤로 돌리면 값이 나타나는 참 편리하고 빠르던 수동식 계산기의 모양이 생각이 난다.

지금의 젊은 신규직원은 전자계산기와 컴퓨터 설계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설계하던 우리 토목직공무원에게 그때 설계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너무도 신기해하며 그런 계산기가 있었냐는 반응을 보인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고 지금 세상이 정말 편리해졌구나 생각이 든다.

돌릴 때 좍좍 소리 나다 마지막에는 땡 소리와 자릿수를 1칸 이동하여 돌리며 계산하던 수동식 계산기 지금까지 보관하였으면 명물일 것이라 생각이 든다. 비록 한 개라도 없는 것이 아쉽지만 수동식 계산기를 생각하면 처음 공직에 들어와 설계하던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 슬며시 웃음이 난다.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불편하기 그지없지만, 사회 초년병이자 내 젊은 시절이 떠오르고 아련한 추억이 된 수동식 계산기가 나는 가끔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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