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 정 수필가, 소이우체국 근무.

 
 
엄마가 나를 보고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준다. 돌아서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나를 향해 얼른 가라고 손사래를 젓는다. 배가 고플테니 집에 가서 얼른 밥을 먹으라며 자꾸만 내쫒는다.

병원에서 집에 데려가 달라고 밤새 떼를 쓰는 바람에 한숨도 못자고 출근을 했었다. 그런 엄마가 이제 포기를 한 것일까. 퇴근하다 들른 나를 웬일인지 붙잡고 매달리지도 않는다. 또 집으로 가자고 억지를 쓰면 어쩌나하며 마음 졸이고 왔건만 전혀 뜻밖의 상황이다.

지금, 나는 요양원에 와 있다. 보름만에 이리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처음 요양원에 가는 날, 옷장에서 옷을 꺼내 가방을 챙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계셨다. 바지를 입히고 외투를 입히자 무슨 눈치를 채셨는지 그렁그렁한 눈으로 어디 가느냐고 물으셨다. 순간 꾹꾹 억눌러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나로 시작된 울음은 집안 전체로 번져 울음바다가 되었다. 모두가 요양원에 모시는 게 죄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독한 딸이었다. 병원에 가시는 거라고 했다. 치료 잘 받고 건강해지면 오빠네 집으로 오실 거라고 했다. 이제 다시는 오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 뻔한 거짓말을 했다.

엄마를 요양원에 모셔다놓고 오면서 아무도 말이 없었다. 주무시고 계시는 틈을 타서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잠에서 깨어 모르는 사람들만 있어서 얼마나 당황해 할까. 또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울까. 낯선 환경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고집도 세고 자존심도 강한 엄마이기에 남보다도 더 혹독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서붓 방으로 들어서는 나를 엄마는 눈빛으로 맞아주신다. 집처럼 편해 보인다. 여기가 마음에서 엄마의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자식들은 더듬더듬 왔다가는 손님이지 않은가. 나만해도 건강했을 때보다 더 자주 들여다보니 더 낫지 않느냐는 내 좋을대로의 생각을 엄마에게 마구 설득하고 싶어진다.

이제, 엄마는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해 보인다. 자식들에게 희생하며 다 내어주고 인생을 한 바퀴 돌아와 쇠잔해진 노구로 다시 아기가 되어있었다. 기저귀를 차고 죽을 떠먹이면 예쁘게 받아먹고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노인들이 해말갛다. 미움도 모르고 욕심도 다 잊은 티 없는 얼굴이다. 보육원에만 천사들이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에도 천사가 있었다. 평생 나를 바라보며 애끓던 천사께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든다. 지금껏 체기처럼 걸려있던 응어리가 녹아내리고 있다. 나는 그 천사에게 당신의 마음을 무섭게 모른 척 해버린 못된 딸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현관에 붙어있는 “입춘대길”의 이른 입춘첩(立春帖)에 달빛이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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