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갑

자주 가는 논길에 커다란 돌 하나가 있다. 산책을 한답시고 무심코 걷다가 혹은 달리기를 하다가 생각지 않게 부딪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짜증을 부리기 일쑤였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성격이 급한 만큼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그 놈의 돌 어떻게 해서든 파 버려야지 했는데, 걸림돌이라고 할 수만도 없음을 알고는 생각을 바꾸었다. 비슷하게 생긴 돌이 아주 요긴하게 쓰임 받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본 건 시골에 사는 아저씨 집에서였다. 고향을 떠나 모두들 대처에 나가 사는 추세에도 고집스럽게 고향을 지키고 있던 아저씨는 집 역시 아버지가 살던 집이었는데, 우연히 놀러 갔다가 마루 밑에 놓인 섬돌을 본 것이다. 지금은 그런 집이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우리 어릴 때만 해도 그걸 딛고 마루에 올라서곤 했다. 왜 그렇게 마루가 높은지 몰라도, 문제의 돌은 꼭 필요한 존재였다.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 디딤돌로 바뀐 셈이다.

  걸림돌과 디딤돌의 개념은 본시 하나였을까. 무심코 채였을 때의 아픔을 생각하면 동떨어진 감이 없지도 않다. 농부들 또한 나보다 훨씬 성가시게 생각했을 텐데 왜 그냥 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같은 돌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속성에서, 걸림돌과 디딤돌의 함수관계를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한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갈수록 힘들었다. 날씨가 좋고 쾌적할 때는 잘 모르겠더니,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지고 가는 널빤지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만 없어도 홀가분할 거라고 투덜대다가 우거진 숲을 보았다. 한 달음에 달려갔으나 꽤 넓은 개울이 가로막아 있다. 물살이 세고 깊어서 잘못 건넜다가는 휩쓸릴 판이다. 나무토막을 걸쳐놓으면 될 텐데 벌판에는 나무 한 그루가 없다. 어떻게 해야 될지 고심하다가 지고 온 널빤지가 생각났다. 안성맞춤으로 딱 맞았으니 널빤지가 디딤돌로 바뀐 것이다.

  풀 한 포기 없는 벌판을 지나 올 동안 그는, 한 걸음도 떼어놓지 못할 만큼 지쳐 있었다. 그러다가 우거진 숲에서 쉬게 된 것은 오는 도중 몇 번이고 버리고 싶어 했을 그 널빤지 때문이다. 널빤지가 없으면 언제까지고 벌판을 헤매었을 테지만, 이는 말 뿐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들게 하는 모두가 자신을 한 단계 올려 줄 디딤돌이 될 줄 모르고 사는 까닭이다. 요긴하게 쓰일 줄 안다 해도 우선은 얼굴을 찡그리는 등 불평을 하게 된다.

  나 역시 그 내용을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걸림돌을 의식하며 살았는가를 돌아보곤 하지만 그 때 뿐이다. 아무래도 우리의 의식 구조가 문제였을까. 걸림돌이라고 하면 너나없이 귀찮게 생각하는 것이다. 무겁고 힘들고 성가시고 한 마디로 치워 버렸으면 싶은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간단히 내려놓는다면 살 이유가 없게 된다. 쾌적한 삶을 추구한다 해도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처럼 한 번은 넘게 될 장벽을 위해서도 널빤지 같은 운명을 지고 가는 것이다.

  앞서 말한 그 돌은 아무리 생각해도 장애물이었다. 산책을 하는 경우가 아닌, 농사에 바쁜 사람들에게는 더 큰 걸림돌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할 수 없는 게, 논길에서야 걸림돌이었지만 댓돌로 쓰일 때는 디딤돌이었다는 복잡한 삶의 양상 때문이다. 걸림돌이라 해도 시간이나 상황에 따른 문제였다는 말이다. 걸림돌을 치우고 필요할 때 대체할 수 있으나 막다른 지경에는 그마저도 용이치 않은 경우가 많다. 설령 있다손 쳐도 디딤돌로 삼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음이다.

  걸림돌을 또 다른 면으로 생각해 본다. 그것은 즉 살면서 극복하는 시련 등이었지만, 직접 방해가 되는 존재도 없지는 않다. 강직하다면 강직한 나는 그것을 참지 못했다. 나를 방해하는 사람 역시 언젠가는 유익한 존재가 됨을 잊고 거추장스럽게 여겨 왔다. 모두가 싫어하는 걸림돌도 디딤돌로 생각해야 되는 게, 걸림돌에의 지나친 의식도 삼가야 되는 것 때문이다. 걸림돌 같은 존재도 디딤돌로 생각할 때라야 상대방 역시 나를 디딤돌로 생각해 준다. 더불어 나 또한 누군가에의 걸림돌일 수 있다고 보면 마땅치 않다고 함부로 대하는 일은 없어야겠지 싶다.

  여기서 문제는 디딤돌로 바뀌는 과정의 변수라 할 수 있겠다. 디딤돌로 되는 건 괜찮은데 어느 때 지금보다 더 큰 장벽으로 남을 수 있다는 건 생각지 않는다. 그럴 때도 원망은 없어야 하는 게, 걸림돌이 완전한 디딤돌이 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또 다른 여파를 초래하는 까닭이다. 한 번 디딤돌이 되었다 해도 어느 순간 또 다른 걸림돌이 되는, 이들은 결국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디딤돌의 전신은 걸림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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