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숙자 수필가

 
 

깊은 겨울 한번씩 서울 손님이 온다.

까마득히 잊었다가도 예고 없이 방문 앞에 섰으면 온 겨울 추위가 다 녹는 듯 따뜻한 사람들이다.

작년 겨울에도 그렇게 왔다.

도착 시간은 오전 열 시쯤, 산채(山菜) 점심을 맛있게 들고 해거름이면 총 총히 떠난다.

내가 그들을 만난 것은 병원 입원실에서였다. 나는 한 달째 입원해 있었고 그들은 중학교 1학년생인 딸아이의 교통사고로 인해서였다. 그때 중 1소녀 가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다.

숱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입원실의 인연으로 이렇게 길게 마음이 오가는 일도 흔치는 않아서, 나는 내심 가을이 깊고 첫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몰아치 는 겨울이 오면 이따금 오솔길로 나가 읍내로 뻗은 행길에 눈을 주며 막연히 누구랄 것도 없이 기다리곤 했다.

올 겨울에도 그들은 소식 없이 와서 나를 반갑고 놀라게 했다.

순진하고 정이 많은 소녀는 세상에서 아주머니를 가장 사랑한다고 해서 나이 든 나를 수줍게 하고, 그녀의 어머니는 후덕하고 조신한 이조의 여인을 연상케 하는 귀부인으로 그 우아한 품위가 나를 사로잡는다. 또 한 사람, 소녀의 이모다. 르느와르의 소녀를 닮은 그녀의 촉촉이 젖은 눈길은 깊고 맑아 신비한 영감을 품어낸다.

식사 후 후식으로 싱싱한 과일을 들면서 이모는 말했다.

“우리들이 춥고 먼 이 시골행을 해마다 한 번씩 하는 이유를 아세요?”

이모는 커튼을 젖히고 겨울 과수원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섰다가 말했다.

“연기 때문이에요. 올 때는 굴뚝마다 솟아오르는 조반 짓는 연기가 좋고 돌아갈 때는 저녁 짓는 연기에 온 마을이 잠기는 평화로움이 좋아서예요

얼마나 편안해지고 따뜻해지는지 아세요? 그 가운데 우리들 이모님 같은 당신이 계시구요.“ 하마터면 주책없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나는 난로 위에서 퐁퐁 끓는 찻물 을 내려 따랐다.

따로따로 굴러다니는 도시인의 외로움이 하얀 김에 서려 내게로 전이(轉移)되고 있었다.

나는 어느 사이엔가 진정 이모 같은 손길로 봉지봉지 선물을 챙기는 것이다.

짧은 겨울 해가 한 뼘쯤 남았을 때 서둘러 떠나는 그들을 배웅하고 돌아서니 조그마한 토끼울 마을이 저녁연기로 가라앉아 가고 있다.

코끝에 싸하니 청솔가지 타는 내음이 닿을 듯하고 마음은 연기 속을 헤치며 유년으로 줄달음쳤다.

그때 어머니는 그을음이 새까만 부엌에서 저녁을 지으셨다.

옹솥에는 밥을 짓고 가마솥에는 군불을 지폈다. 바싹 마른 가랑잎은 밥솥에 때고 청솔가지는 군불솥에 썼다.

나무는 칠월에 해 둔 칠월비가 제일 좋지만 손포가 없는 집은 미리 장만을 못 하고 눈 오기 전에 갈퀴를 들고 산에 올라 가랑잎을 긁어모아다가 때었다.

그것도 아쉬운 날은 청솔가지를 툭툭 쳐다가 아궁이 가득 쑤셔 넣고 불을 당기면 청솔가지는 생피를 태우듯 불똥을 튀며 타 들어갔다. 그러자니 연기가 매캐하게 온 마을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이럴 때 수수비로 부뚜막을 쓸어내리며 나를 밖으로 내몰았다.

나는 매운 연기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아궁이 앞을 뱅뱅 돌았다. 이유인즉 거기 재 속에 묻어 둔 알밤 두 알이 다 타 버릴까 봐서 애가 탔던 것이다.

잔꾀 한 번 피우지 못하는 어린것은 생밤이 잿불 속에서 다 타들어 새까만 숯덩이가 될 때까지 부엌 바닥을 쓰는 어머니의 성화를 받으면서도 지키고 있다가 부지갱이로 찾아낸, 숯이 된 밤을 보고서야 비질비질 울며 부엌을 나섰다.

뒤곁 장독대에 쪼그리고 앉으면, 눈물이 질펀히 흐르고 하늘로 구름기둥을 세우며 오르는 하얀 연기가 자꾸 서럽게 했다. 목이 아프도록 젖히고 올려다본 연기는 얼마쯤 올라가다 모두 흩어지고 마는 것이 이상하고 서운했다.

눈이라도 내릴 듯이 조용한 저녁이면 연기는 더욱더 높게 꾸역꾸역 솟아올랐다.

이런 나를 어머니는 늘 불안해 하셨다. 어린것이 너무 안차고 조용하다는 꾸중이었다. 그리고는 저녁 상머리, 노랗고 반들반들하게 익은 군밤 서너 알을 상 귀퉁이에 얹어 주시던 어머니. 언니와 삼촌이 눈치챌까 봐 냉큼 움켜서 치마폭에 감추면 배꼽께로 스며들던 그 따뜻한 알밤의 체온, 그것이 임종의 순간에까지 나를 걱정해 주시던 어머니의 체온임을 불혹에 서서 느끼다

니, 나는 요즘도 어머니가 문득문득 그리워지면 저녁 오솔길로 나선다.

이제는 농촌에까지 연탄과 가스가 보급되어 점차 저녁연기는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도시의 공장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시커먼 연기가 도시의 맥박 이라면 시골의 저녁 연기는 향수의 시그널이 아닐까.

반가운 서울 손님들도 빽빽한 생활의 톱니에 몰려 정신없이 돌다가 유년의 시절이 그리워서 장장 왕복 여섯 시간의 먼 길을 다녀가는 것일 게다.

어찌 그들만이 저녁연기가 그리울까, 마음의 고향까지를 잃어버린 현대인들 가슴 구석에는 언제고 돌아가 스스럼없이 무릎 베고 누워 쉴 어머니의 품 안 같은 고향이 자리하고 있지만 밀리고 밀리는 생활에 서로 마음만 앓고사는 것이다.

시골에 오래 살다 보면 또 그대로 도시의 시멘트 가루를 묻히고 오는 사람들이 못내 그리울 때가 많다.

무위의 타성에 젖어 있는 나에게 그들이 남겨 놓고 가는 것은 템포 빠른 삶의 선율이다. 신선한 자극이다. 그래서 도시와 시골의 만남은 필연의 조화다.

고즈넉이 언덕 위에 서서 내려다보면 야트막한 산골짜기 오므린 손바닥에 들어설 듯 싶은 작은 마을이 평화롭다. 아무리 양옥집이 많이 들어섰어도 조

 

석으로 향을 피우듯 솟아나는 연기로 하여 우리 모두는 푸근하고 여유로울수 있는 것이다.

저녁연기는 어머니의 행주치마 자락, 달 뜨기 전 산마루가 나뭇가지 위에 걸리고 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어머니의 기도는 착하게 살라시는 당부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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