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나영 음성가정(성)폭력상담소장

 
 
육남매의 장남이셨던 아버지, 맏며느리로 평생 집안 대소사를 챙기며 힘들게 살아오셨던 어머니 이렇게 나의 부모님은 그 시절 참으로 많은 역할을 묵묵히 해 내고 계셨다.

 어려서부터 나는 명절 때마다 늘 혼자 애쓰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속상해서 조금이라도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에 그날만은 군말 없이 어머니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다 했던 기억이 있다. 명절날 아침이면 멋지게 차려 입고 나타나는 숙부, 숙모들이 어린 내 눈에는 얄밉고 보기 싫었다. 명절 준비로 일주일 전부터 고생한 나의 어머니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명절 때가 싫었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어머니는 여기 저기 몸이 아프셨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나도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어 살고 있다. 결혼 초 우리 시댁의 명절 문화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명절 준비는 모두 여자들의 몫이었다. 시어머니를 포함한 며느리들의 노동만을 당연히 요구하였다. 며느리들은 음식 준비며 설거지 까지 동네 어르신들 접대까지 잠시도 편히 앉아 담화를 나눌 새가 없었다. 반면 집안의 남자들은 참으로 여유롭고 즐거워보였다. 명절의 참 의미는 무엇일까? 바쁘게 살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조상님과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기리며 차례를 지내고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뜻 깊은 날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명절의 의미가 오히려 퇴색되고 가족간의 갈등이 야기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그것은 결코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일 일것이다. 어떤 부부는 명절 때만 다가오면 서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꼭 다투게 된다고 한다. 평소에는 자상했던 남편도 시댁에만 가면 더욱 가부장적으로 변하고 손 하나 까닥하지 않는 모습 때문에 너무나 얄밉고 화가 난다는 아내, 남편은 친척들과 술 마시며 재밌게 놀지만 며느리인 자신은 쉬지도 못하고 뒤처리만 하다 돌아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 사회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늘어나고 있고 대부분 하나 둘 정도의 자녀를 두고 있다 보니 딸 아들 구분 없이 너무나 귀한 자식들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명절 문화에도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아니 이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의 풍습도 때론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들의 인식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으며 세대간에 느끼는 의미와 가치의 차이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세대간의 이해와 양보도 필요하다. 나도 이미 부모가 되었고 앞으로 아이들이 성장하여 결혼하면 시어머니가 될텐데 이왕이면 며느리와의 세대 차이를 줄여나가고 싶다. 한국의 고질병이라고 하는 명절증후군은 아이러니하게도 온 가족이 다 함께 즐거워야할 명절에 오히려 스트레스로 인해 나타나는 신체적, 심리적 증상들이다. 특히 문제의 출발은 명절 음식 준비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남자들 입장에서는 일 년에 겨우 몇 번의 명절과 제사정도를 가지고 여자들이 너무 불만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남자들이 먼저 명절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재해석해야만 한다. 명절은 남자 여자를 떠나 가족 모두에게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준비하고 참여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가사노동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공평한 역할 분담을 하고 가족이라도 서로 비교하거나 비난하는 말들은 삼가하고 틈틈이 휴식을 가지면서 건강하고 유쾌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돈만으로 가족의 행복을 살 수는 없듯이 각 가정의 형편과 상황에 맞는 명절 준비로 가족간의 따뜻한 정과 마음이 전해질 수 있는 그런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