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순 수필가

 
 
 여름을 정신없이 보냈다. 새벽부터 정오가 지나도록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 없는 날이 반복되었다. 땀범벅이 된 몸에서는 쉰내가 가시지 않더니 어느새 바람이 차가워졌다. 하늘은 높아졌다. 일에 지친 내 일상에도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복숭아나무의 노란 종이봉지가 줄어들면서 소득의 즐거움도 줄었다.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싹을 틔워 여름내 잎과 열매를 달았던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다 내어주고 이제야 가벼워졌다. 고생한 나무에게 수고했음을 전해야 함에도 나는 한 상자라도 더 팔고 싶은 욕심에 허전해했다.

복숭아 한 품종을 따는데 걸리는 시간은 열흘정도이다. 첫 수확은 처음이라는 의미가 크고 두 번째부터는 맛이 좋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올해도 열매를 많이 달아 주어 수확하는 재미가 있었고 농사짓는 일에 조금이나마 보람을 느꼈다.

한 나무에서 똑 같은 열매를 맺어도 익어가는 시간이 다르다. 나뭇가지가 하늘과 맞닿아 있으면 열매는 색이 곱고 맛은 달다. 한 줄기에서 서로 다른 맛을 내기도 하고 크기 또한 제각각이다. 열매를 솎아 내는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나무의 나이가 많을수록 열매는 크고 굵다.

복숭아는 수확이 끝날 무렵이면 상품으로의 가치가 줄어든다. 맨손으로 작업해야 상태를 잘 알 수 있다. 복숭아의 표면이 단단하지 않고 물렁해지면 씹는 질감도 나빠지고 맛도 덜하다. 껍질은 주름이 지고 보이지 않는 속부터 벌레가 먹은 것이 많다. 작은 충격에도 상처가 쉽게 생겨 만지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꼭지가 약해지면 바람에도 열매가 떨어질 뿐더러 가지에 밀려서도 떨어진다. 첫 열매부터 마지막까지 한결같으면 좋으련만 절대 그러하지 않다.

농사는 한 철이라는 말이 있다. 자연은 봄부터 가을까지 겨울나기 준비를 하지만 농부는 일 년 살 걱정을 미리 한다. 한 철 농사를 위해 일 년 내 일하는 농부의 일터에는 가족에 대한 소망과 자신의 반성이 담겨있겠지만 나무는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없다. 적당히 주고 물러서 있다.

자연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우리가 조급하게 행동해도 나무는 우리에게 느슨하게 살라 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기득권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 농부의 것이 아니다. 농부는 나무가 열매를 더 오래 매달고 있게 하려고 지주대로 받쳐 주고 줄로 잡아당겨가며 균형을 잡아 준다. 나무가 지탱할 수 있도록 사람이 힘을 쓰지만 나무는 알아서 열매를 떨어뜨려가며 나의 욕심을 깨닫게 한다. 떨어진 열매는 곤충들의 먹이가 되고 거름이 되어 나무에게 스며들 것이다.

한 해 동안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작은 것 하나도 소중하고 버리기가 아깝다. 가까운 이웃에게 나눠주고 복숭아가 귀할 때를 생각해 끓여서 냉장보관중이다. 가까스로 매달렸던 끝물 복숭아를 모아 잼을 만들어 나도 겨울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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