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수필가 소이우체국 근무

 

 
 

 나는 평범한 여자다.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고 한 남자의 아내이기도 하다. 나의 호칭은 안에서는 여보이기도 하면서 수한이 엄마이다. 또한 밖에서는 이름이 쓰여진다. 사무실에서는 이름 뒤에 씨라고 붙여주고 글쓰는 모임에 가면 이름 뒤에 선생님이라고 불러준다. 여자로서 몇 개의 호칭을 갖고 있으니 감사할 일이다.

아파트의 주인인 나는 집안을 가꾸는 일을 담당하고 농막의 주인인 그이는 밭을 돌보는 일을 맡고 있다. 나보다는 그이가 더 부지런을 요한다. 고추를 심어 제때에 줄을 매야 하고 토마토 순도 자주 잘라주어야 한다. 하나하나 손길이 닿아야만 하는 농막은 게으름을 피우면 금방 표가 난다.

풀들이 제 세상을 만나 극성을 부리고 잠깐 때를 놓치면 채소들은 시름시름 병을 한다. 일주일 만에 가보면 또 미친 듯이 앞 다투어 풀들이 올라와 있다. 뽑다뽑다 내가 먼저 지쳐 떨어진다. 풀처럼 지치지도 않는 놈도 없다. 질기고 질긴 놈들이다. 풀에게 당한 나는 그이에게 잔소리로 되돌려준다. 우리 밭이 밀림인줄 알고 호랑이도 찾아들겠다고 투덜대는 것이다.

여기서 잘때면 새벽 다섯 시를 못 넘기고 잠을 깬다. 여러 종류의 새들이 이 시간이면 용케도 찾아와 울어댄다. 공장을 짓느라 산을 밀고 조금 남은 자투리 산에 온갖 새들이 찾아와서 앙칼지게 우는 놈에 곱게 울고 가는 녀석에 각양각색이다.

일요일이라 조금 늦잠을 자고 싶은 나는 새를 상대로 궁시렁거린다. 잠도 못자게 훼방을 논다고 칭얼대면 그이의 한마디는 농막의 주인답다. 여기가 산속이니 새들 구역에 내가 침범한 것이어서 시끄러워도 내가 참아야 한다는 이론이다. 언제부턴가 그이는 자연에 적응이 다 된 눈치다.

새들 때문에 잠을 깬 나는 일찍이 아침을 준비한다. 여기에 올때는 늘 빈손이다. 마트에 들러 찬거리를 사오는 일은 없다. 쌀을 씻어 불려놓고는 채마밭으로 나간다. 한 바퀴 휘 돌아오면 찬거리 준비가 끝난다. 바구니엔 오이도 한 개, 가지도 몇 개, 새싹채소도 담겨있다.

여린 채소를 다듬는다. 살짝 무쳐 겉절이로 내면 그이가 좋아하겠지. 순간 난데없이 가슴안에 아지랑이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이 뜬금없는 뭉클함은 무어지. 아,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행복은 집채만큼 커다란 것이 아닌 아주 작은 모습이었다. 이런 소소한 일상들이 모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이 됨을 아침식사를 준비하면서 느낄줄이야.

행복이 멀리에 있는 줄 알았다. 형체도 없는 행복을 잡으려고 수없이 헤맸던 나는 그때마다 실망하고 좌절하며 원망도 했다. 그러나 정작 여기에, 내 안에 있었음을 깨닫는 아침이다.

나의 지금의 이 평화가 내가 그토록 찾던 행복임을 알게 해주는 감사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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