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 정 수필가 , 소이우체국 근무

 
 
아! 노을이어라.

퇴근길에 온통 붉은 단풍 물들인 하늘이 차안으로 와락 달려든다. 이 황홀한 모습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혼자서 “어머나”를 수없이 질러댔다. 지금껏 이리도 고운 노을은 처음이다.

나는 이 노을을 끝까지 지켜보고 싶어 차를 옆으로 세웠다. 한참 이 아름다운 광경을 지켜보는데 갑자기 애린 마음이 찾아왔다. 해가 지면서 마지막 빛을 한꺼번에 다 풀어내고 가려는 안간힘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마치 이 노을이 내가 지금 서 있는 인생의 50대를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태양은 낮 동안 온 힘을 쏟아 곡식을 키워내고 열매도 익게 했다. 그리고는 어둠이 오기 전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남은 빛을 풀어내고 져가고 있었다.

정신없이 아들을 키워내고 나니 중년이 되어 있다. 기운도 없어지고 허리도 굽어지는 황혼의 바로 앞길을 걷고 있다. 나이를 받아들이듯이 내 몸도 실재를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껏 크게 아파서 병원을 간적이 없었는데 불청객은 내게 감기처럼 불쑥 찾아왔다.

꽃샘이 입김을 불어대던 즈음, 힘이 쭉 빠져나가면서 어디라고 꼬집어서 말할 수 없이 온몸이 다 아팠다. 몸살처럼 며칠을 앓다가 의사를 찾아가서 들은 병명은 갱년기였다. 녹두알만한 약을 먹으라고 처방해 준다.

오십대가 되니 아이들을 다 키워놓아 하나 둘 집을 떠나간다. 엄마들은 그들을 향하여 거미줄처럼 늘어트려 놓았던 신경줄을 단번에 끊으면서 허탈감은 용케도 알고 찾아온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나하는 자괴감이 자신을 괴롭히면서 공허감도 동반한다. 이 둘은 갱년기를 부르는 사이좋은 관계다.

갱년기. 이제부터는 홀로 서기를 해야 할 때다. 남편으로 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아이들에게서도 벗어나 자신만을 위해 살라고 주어진 시기인듯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엄마로서가 아닌, 아내로서가 아닌 오로지 나만을 위한 삶을 살 때이다. 내가 자식이나 남편에게 칭얼대 봐도 소용없다. 그들은 직장일로, 학교일로 바쁘다는 핑계를 댈 것이기 때문이다. 귀찮아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찾아온 반갑지 않은 갱년기를 저 하늘의 노을을 따서 노을기로 부른다. 황혼이 되기 전에 저녁하늘을 곱게 물들이는 노을이고 싶어서다. 아니 초라한 노구가 되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뜨겁게, 붉게 타고 싶어서이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 요즘에 이제야 반밖에 더 살지 않았는가. 후회 없는 삶을 살기에 충분한 시간이지 않은가.

오늘따라 유난히 더 노을이 붉다. 이토록 고운 것은 오늘에 최선을 다 했음을 태양은 말하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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