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 앞에 덫을 놓았다.
고약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닭들을 지키기 위해 관찰 중이다.
우리 집은 닭과 개를 기르고 있는데 겨울과 봄에는 닭을 놓아서 기른다. 따뜻한 봄이면 어미 닭은 알을 품는다.
어미 닭이 20일 동안 품어서 병아리가 되기까지 식음을 전폐하고 둥지를 지키며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과 마찬가지로 산고의 아픔을 격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란 병아리는 우리 집의 활력소가 되어준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노니는 병아리를 잡으려고 다가가면 쏜살같이 도망가고 어미닭은 깃털을 세우고 쪼며 덤빈다.
모성 본능은 사람과 짐승이 다를 바 없다. 서산 그림자가짙게 깔리면 병아리와 어미 닭은 닭장 안으로 들어가 어미 닭 품속으로 몸을 숨기고 발만 보인 모습이 앙증맞다.
어느 날 병아리가 중닭으로 자랐을 때 세 마리 없어졌다. 낮에는 항상 빈집이라 도둑이 훔쳐갔다고 나는 큰길을 바라보며 야박해져가는 인심에 고개를 저었다.
1년 농사 지은 알곡도 훔쳐 가는데 놔 기르는 짐승이야 오죽하냐며 남편은 괜히 속 끓이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 때 일이 또 벌어졌다. 어미 닭이 몸은 있는데 머리만 없어지고 중닭 한 마리가 없어진 것이다.
어미 닭은 왜 머리만 없어 졌을까 순간 무서움이 뇌리를 스쳤다. 사람이 한 것 같지 않고 분명히 짐승 짓 같았다.
어릴 적 개호주가 나타나 짐승을 잡아먹곤 했는데 요즘도 그런 짐승이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런 것이 어디 있냐며 핀잔이지만 나는 무성(茂盛)한 콩밭을 바라보며 떨고 있었다.
자꾸만 일이 생겨 이상하다고 생각할 즈음 또 일은 벌어졌다. 중닭이 없어지고 어미 닭은 목이 물린채 간신히 살아 있다.
중닭은 계속 없어지고 어미 닭은 목만 공격받는 것이 더욱더 어떤 짐승일까 궁금증이 더해만 간다. 싸아하니 아침 바람이 불어온다.
우리는 사후약방문격으로 철망을 사다가 닭장을 꼼꼼히 고치고 놈을 유인하기 위해 죽은 닭을 미끼로 매달아 놓고 덫을 몇 군데 놓았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살쾡이는 덫에 걸렸을 때 죽은 척 하고 있다가 사람한테 덤벼들어 해꼬지 한다는 것이다.
그날 밤 후덥지근한 것이 몹시 더웠다. 나는 남편이 잠들었을때 슬그머니 창문을 모두 닫았다.
놈이 샷시망을 뚫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무서운 생각을 하니 요요 현상이 일어나 며칠동안 선잠을 잤다.
닭장을 고치고 며칠 후였다. 개가 요란하게 짖고 닭 울음소리가 들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남편을 깨워 밖으로 나온 우리는 숨을 죽이고 손전등으로 닭장 앞의 덫을 비춰 보았다.
놈이 왔다간 모양이다. 닭들이 훼에서 내려와 있고 개도 안절부절 짖어대고···. 깜깜한 밤 공기의 바람이 나를 끌어 잡는 것 같았다. 잠이 싹 달아나는 오싹한 밤이었다.
날이 밝으면 우리는 덫을 확인한다. 밤이면 별을 헤며 눈망울을 껌뻑인 것이 무색할 정도로 덫은 낌새도 없다. 드러날듯 말듯한 숨바꼭질 속에서 오기(傲氣)만 더해 갔다.
아이들도 덩달아 살쾡이와 개호주가 뭐냐며 관심을 갖는다. 드디어 나타났다. 개밥을 주기 위해 개집으로 갔을 때 작은 아이가
“아빠 저것 봐요 개장안에 뭐가 있어요.” 하며 외쳐 대는게 아닌가 그 동안 꽉차있던 두려움의 실타래가 풀어지는 순간이다.
‘너 바로 너였구나.’ 그것은 바로 꼬리가 긴 족제비였다. 덫에 걸려 발버둥치는 것을 개가 물어 개장 안에 놓은 것이다.
우리 집 개는 족제비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지키고 있었다. 결국은 개가 공을 세운 것이다.
꼬리가 길면 잡히듯 꼬리가 긴 족제비 놈은 중닭 5마리와 어미 닭 2마리를 끝으로 사라져 갔다.
여름밤의 일들이 장마 비에 씻겨 멀리 떠나가길 바래본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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