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강동대 사회복지행정학과 교수

 

 
 

지난 9월28일부로 김영란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의 출발은 2011년 소위 ‘벤츠여검사 사건’로 알려진 현직 여검사와 변호사의 수 천만원대 금품수수를 동반한 부적절한 행위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부터이다. 이후 이 사건이 무죄가 선고되면서 우리 법체계의 부정부패에 대한 맹점을 보완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를 강력히 추진한 김영란 전국민권익위원장의 이름을 딴 법이 제정되었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라는 공식적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공무원, 사립학교 교원,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관계없이 일정 이상의 금품 혹은 향응을 제공받은 경우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사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깨끗해져왔다. 지금은 아득한 관공서의 급행료, 학교의 촌지 등이 당연시 되던 시절이 있었다. 또한 권력을 통한 부의 축적은 부러움의 대상이지 비난할 일도 아니었다. 대학생이던 1980년대 후반 첫 유권자로서 국회의원 유세를 듣고 점심 먹으며 현금을 낸 사람은 그 식당에서 필자 밖에 없었다.

 다른 분들은 모두 도장이 찍힌 종이를 밥값으로 지불하고 있었다. 아직도 감곡면 뒷골목 그 날의 기억이 생생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들은 이제 신문기사감이 될 정도로 흔한 일이 아니며, 강력히 처벌받고 있다. 분명 그 당시보다 우리 사회의 부패가 일정부분 없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란법이 제정되어야 할 이유는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보다 더 확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소위 ‘빽 혹은 연줄’이라는 음성적이고 사적인 관계를 통한 일처리 관행이 우리 사회에 아직도 만연한 것이 사실이다. 사소한 일처리에 있어서도 연줄을 찾고자 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대형병원이라도 가려하면 ‘혹시 그 병원에 누구 아는 사람, 사돈의 팔촌이라도 없나?’ 찾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다. 사적 관계를 통한 일처리는 뇌물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해악을 끼칠 수 있음에도 당사자들은 이를 부정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비합리적 일처리라는 동일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뇌물은 명백한 금품이 오가는 반면, 연줄은 단순히 ‘정리(情理)’의 표현에 불과할 수 있다는 심리적 자기합리화를 이끈다. 빽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지불되어야 한다는 것은 최근 일련의 ‘스폰서검사’사건에서 알 수 있다. 연줄을 위한 비용의 총액이 결코 뇌물의 금액보다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나기냐? 이슬비냐? 차이일 뿐, 옷이 젖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기 시작되면서 우리 곳곳에서 혼선이 일어나고 있다. 김영란법 신고 1호가 캔커피를 전달받은 교수라는 코메디 같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국민권익위원회는 동법을 질의하는 내용이 수백 건이 답을 기다라고 있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법으로 인해 갖가지 활동 등이 위축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잘될 수는 없다. 처음은 낯설고, 익숙하지 못하다. 마찬가지로 금번 김영란법의 출발에 있어서 일정부분 혼란은 감수하여야 한다. 또 예상도 된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라는 속담처럼 9월28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금번 이 법이 우리 사회에 효과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면 분명 한 단계 투명성이 높아진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빽과의 영원한 단절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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