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순 수필가

 
 
그녀가 유럽 여행을 떠난단다. 자신이 없는 동안 딸에게 복숭아 한 상자를 보내달라며 하는 이야기다. 명절연휴 기간을 이용한 일정으로 1년에 한 번은 다녀와야 살 맛 난다며 그녀는 한참을 떠들었다.

조상들이 젯밥을 얻어먹기 위해 그녀와 함께 여행을 떠날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내심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맏며느리인 나는 명절 전부터 마음이 분주하다. 해야 할 일이 많은 명절을 지내야 된다는 부담감은 언제나 크다.

추석 내내 복숭아 작업으로 바빴지만 연휴가 끝나고 약간의 여유를 찾았다. 몸이 꾀를 부리는지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밭일이라는 것이 끝났다라고 선언하며 끝나는 것이 아닌 만큼 많은 일에 비해 몸이 따라주지를 않는다.

매일 누워만 있다. 남편이 들에 나가고 나면 겨우 일어나 쌓인 설거지를 마치고 책을 읽는다. 여름내 읽지 못하고 밀어놓았던 책을 붙들고 살고 있다. 우리 부부가 바쁘게 보내는 동안 가족과 여행하는 시간도 줄었다. 잠시나마 책을 읽고 생각을 이어가고 상상하는 것이 내 유일한 즐거움이다.

남편의 눈에는 난 팔자 좋은 여자로 보일 것이다. 할 일이 많아 쉬지 못하는 자신과 달리 나는 책을 읽고 있거나 모임에 나가고 강의를 듣겠다고 쫓아다니니 말이다. 지쳐있는 내 속의 지적욕구가 절실함을 그는 모를 것이다.

2년 전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책이 있다. 그 책을 쓴 작가의 강연회 소식에 곧바로 신청을 했고 며칠 전 강의를 듣게 되었다. 작가 자신에게 소설이 주는 의미와 소설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들으며 글을 쓰는 내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20대 초에 어머니를 잃고 바쁘게 살다가 20년이 넘어서야 여행을 시작했다는 작가를 보며 나는 왜 위로를 받았을까. 첫 여행으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종주코스를 완주 했다는 말에 대단한 집념이 있음을 알았다. 작품 속 인물과 공간을 수없이 생각하며 말과 글을 채우다 지치고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감정이입을 위해 다양한 체험을 한다. 서스펜스와 극적아이러니를 주로 다루는 작가는 소설 속 인물과 하나가 되기 위해 모든 힘을 쏟는다. 인간의 본성을 찾아야 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실험해 보겠다는 의지가 작가를 산소가 희박한 산으로 이끈 것은 아닐지 혼자 상상을 하며 귀를 기울였다.

숨을 길게 쉬어본다. 나는 어떤 여행을 원하고 있을까. 작가가 한 작품을 쓰기위해 잡아놓은 초고의 유효기간은 3개월이라 했다. 글쓰기 작업을 시작할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소설작가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자신을 만나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글로 써야 한다.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몸으로 하는 여행보다 마음이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다. 시간과 기운을 다 써버린 여름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지도 모른다. 힘들고 지친 몸을 다독거려주고 내 안을 정돈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글은 밥과 같아야 한다. 고상한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숨을 쉴 수 있는 동안은 언제든 할 수 있는 마음여행이 내 삶이다. 마음여행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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