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순

평화로운 우리 마을(문암동) 가을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 같습니다.

넓은 앞마당에는 콩 타작이 한창입니다. 도리깨가 윙윙 창공을 번개처럼 휘날리며 휘파람을 붑니다. 국화 꽃 향이 그윽한 시골 골목길은 평화롭지만 일손이 바쁜 노인들의 굽은 허리를 펴볼 사이가 없답니다.

김장 배추를 절이는 집에는 이웃이 모여 김치 속을 버무리느라 웃음꽃이 골목길로 새어 나옵니다. 그냥 지날 수 없어 고개를 길게 빼고 담 너머로 넘겨다보니 어서 오라고 부릅니다. 양념 냄새가 앞마당 가득 합니다. 돼지고기를 삶아서 이웃들과 잔치를 합니다. 형제가 많은 부자 집 김치 담그는 날 풍경은 풍성합니다. 총각김치, 갓김치, 동치미, 파김치 보쌈김치 배추김치를 담아서 첫째 둘째 셋째, 딸 이름표를 붙여서 잔뜩 쌓아 놓았습니다. 힘든지도 모르고 나누워 줄 주인 마나님의 즐거운 표정이 부처님 같아 보입니다.

들깨를 마당에 널어놓은 집도 있고 고추 다듬는 부부의 모습도 보이네요. 경운기 가득 무와 배추를 싣고 털털거리며 시장으로 팔러가는 농부는 배추 값이 헐값이라고 울먹입니다.

택배차가 골목에 와있습니다. 객지에 나가있는 아들딸들에게 쌀이며 마늘 김장김치도 모자라서 고춧가루 참기름 들기름 짜서 박스며 자루에 담아 꼬리표를 붙입니다. 주소록을 들고 왁자지껄 주소를 불러주는 노부부의 사랑 노래 소리가 아들딸들 귀에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피와 땀의 결정체입니다.

핸드폰의 편리함과 택배 문화가 생기고 우체국까지 가야 했던 수고로움을 덜었습니다. 어르신들은 바리바리 힘겨운 줄 모르고 등짐으로 져다 택배 붙이러 다니던 몇 년 전 고생담 얘기소리가 골목길을 누빕니다. 주소를 들고 서울 가서 무거운 보따리 들고 아들 집 찾느라 진 땀 뺀 이야기부터 주차장에서 집 보따리 잃어버릴 까봐 오두가두 못하고 아들 오기를 해가 지도록 기다렸다는 분도 계시고 참으로 지나온 역사가 눈물 나게 정겹습니다.

처마 끝에 메주를 쑤어서 짚으로 엮어 파리 때문에 양파 망을 모아 두었다가 담아 대롱대롱 처마 끝에 매달아 놓은 집도 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감을 까서 곳 감 만들려고 실에 대롱대롱 마치 풍경처럼 매달아 놓은 집도 있답니다. 바람에 흔들이면 종소리가 날것처럼 신선해 보입니다. 고추장을 담는 집도 있네요. 신식 고추장이라며 각종 효소를 담아 두었다가 고춧가루와 메주가루 고추장용 된장을 사다가 효소만 넣고 소금 간을 하면 즉석에서 맛나게 먹을 수 있는 고추장을 만든답니다.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보니 매우면서도 달콤한 고추장 맛입니다. 할머니는 올해는 고추가 풍년이라며 함박웃음을 웃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부모님 생신을 맞으면 경로당에 출장 뷔폐를 시켜 한바탕 찬지를 엽니다. 노래 가락이 흘러나오고 그런 날은 마을 축제나 다름없답니다.

시에서 지원해주는 난방비와 운영비로 어르신들은 따뜻한 겨울나기를 올해도 폭은 하게 할 것입니다. 욕심이 있다면 찾아가는 경로당 프로로 노후를 아름답게 사는 방법이나 즐겁고 보람 있게 살 수 있는 좋은 강의를 들려 드리면 더없이 만족 할 것 같습니다.

이제 경로당으로가 서리 태 콩이 다문다문 섞인 밥을 지어 김장 하는 집에서 얻은 김치로 상을 차리고 어르신들과 만찬을 즐기고 싶어집니다.

잎 떨어진 감나무에는 붉은 감이 연등처럼 매달려 있고 억새와 갈대가 손을 흔듭니다. 철새들이 창공을 끼룩거리며 날아갑니다.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이 겁나게 아름다운 문암 생태 공원 풍경은 혼자 보기 아깝습니다.

약력

음성 출생

95년 문예 한국 수필로 등단

수상 : 충북 도예총 우수 예술인상

충북 수필문학상

여성문학. 여백, 충북 수필문학, 청주문협 회원

저서 : 항아리에 담은 세월

향기 도둑

천연 화장품 만들기

자연의 향기 &여인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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