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선 수필가

아직 시금치도 다 씻지 않았는데 냄비에선 물이 끓고 있다. 손이 한 두 개쯤 더 있으면 싶다. 당근도 채 썰어 볶아야하고 우엉이며 다른 것들도 다듬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내 손이 더딘 것 같다. 조금 있으면 학생들이 올 텐데 마음만 바쁘다. 오면 같이해도 되련만 좁은 주방도 그렇고 낯선 집에 와서 서먹할 것 같아 재료 준비만이라도 해 놓으려니 이렇게 부산스럽다.

오늘은 지난 해 내가 가르쳤던 결혼 이주여성들이 우리집에서 김밥을 만들어 먹기로 한 날이다. 우리집에 오고 싶다는 학생들을 바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초대를 하게 되었다. 한 여덟 명은 올 것 같다는 소식에 넉넉히 준비를 했다. 같이 먹고 가족들 것도 챙겨줄 요량이었다. 그런데 막상 당일이 되고 보니 다리를 다치고, 아기가 입원하고, 감기로 병원에 간다고 4명밖에 오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일곱 명이다. 유치원생 한 명, 애기 한 명,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온 학생도 있었으니까.

종강하고 두어 달 만에 만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반가워했다. 이야기는 김밥 만들면서 하자며 만들기를 시작했다. 평소에 참치 김밥을 좋아해서 재료를 넉넉히 준비했는데 그러길 잘 했다. 다들 참치 김밥을 좋아한단다. 한 번도 김밥을 싸보지 않은 학생도 있고 자주 싸 본 학생도 있었다. 처음에는 김밥이 터져서 내용물이 밖으로 다 나와 배꼽을 잡고 웃기도 하고 밥을 골고루 펴지 않아서 위는 뚱뚱하고 아래는 홀쭉이가 된 것도 있었다. 몇 개씩 싸보고 실패를 하다 보니 솜씨가 없는 나보다 훨씬 예쁘게 잘 쌌다.

김밥 싸는 모습이 재미있는 듯 베트남 학생 아버지는 시선을 고정시키고 계신다. 김밥을 싸며 학생들과 김밥이 먹기는 쉽지만 준비하는 과정이 복잡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웃고 이야기하는 동안에 그 많던 재료는 완성품으로 쟁반에 소복이 쌓였다.

김밥은 싸는데도 기술이 필요하지만 써는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팔에 힘을 빼고 칼을 살살 누르면서 썰어야지 힘을 꽉 주고 썰면 속이 다 터진다. 접시에 예쁘게 담아서 어묵 국물과 함께 먹는 김밥은 참으로 맛있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웃는 베트남 학생 아버지도 잘 드신다.“선생님, 아버지가 너무 맛있으시대요”하면서 웃는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남의 집을 방문해 어색해 하시더니 김밥을 드실쯤에는 편안하게 딸과 대화도 나누신다. 아버지 혼자계시면 심심하실 테니까 모시고 가라했다던 남편이 고맙다며 또 웃는다.

김밥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수업시간이 떠오른다. 결혼이주여성들은 모든 것이 생소하고 통하지 않는 언어 때문에 입 열기를 두려워한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나면 의사표현을 어느 정도 하게 된다. 내가 맡은 반은 초보딱지는 뗀 반이라 대화가 통하는 편이다. 베트남, 중국, 캄보디아, 필리핀……서로의 문화가 다르다 보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밤을 새워도 다 못할 지경이다. 우리나라 문화가 이렇게 어려웠던가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고부간의 갈등이다. 입에 맞지 않은 음식 때문에 격고 있는 고통을 가족들은 헤아려주지 않고 음식 타박한다고 면박을 준다. 또 남편에게 집안일을 시키는 며느리가 못마땅하여 나무라면 며느리는 본국의 문화를 서툰 언어로 설명하니 통하기가 어렵다. 어느 필리핀 학생이 시어머니가 이야기할 때 눈을 쳐다보고 있었더니 예의 없다고 나무라셨단다. 필리핀은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눈을 쳐다보는 것이 예의라는데 말이다. 이렇게 크고 작은 문화차이로 겪는 고통을 본인이 아니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김밥을 싸면서 처음에 쌀 때는 터지고 쭈그러들고 했지만 자꾸 싸다보니 통통하고 예쁘게 쌀 수 있지 않았던가. 고부간의 갈등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라를 떠나서 상대방을 조금씩 배려하는 문화가 자리 잡힌다면 서로에게 상처주고 받는 일이 지금보다 많이 줄어들 것 같다.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는 김밥처럼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다 보니 이곳이 인생 상담소 같다며 한바탕 웃었다. 준비하는 과정이 좀 힘들긴 했지만 즐거워하는 학생들을 보니 나 또한 기쁘다. 부디 한국생활에 잘 적응해서 원하는 꿈을 펼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밥 한 줄씩 들고 현관문을 나서며“맛있었어요”“즐거웠어요”하며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내 자식인 듯 흐뭇하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