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준 식 전 충북반도체고등학교 행정실장

 
 

1970년대 쌀밥은 부의 상징이었다. 대부분의 집들은 보리밥은커녕 잡곡밥이 주식이었고 저녁에는 수제비나 국수를 먹거나 옥수수에다 감자나 고구마로 때웠다. 보리밥은 입안이 껄끄러웠고 멀건 국수는 젓가락 없이 그냥 마셔도 되었다.

가끔 제사 때나 명절 때는 하얀 쌀밥을 먹곤 하였다. 쌀밥에 김 한 장 올려 먹는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돌곤 했다. 쌀이 부족한 상황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정부에서는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로 홍보 구호가 바뀌었다. 정부에서는 쌀이 부족하여 잡곡을 섞어 먹는 것을 권장하였고 학교에서는 도시락 검열을 하였다.

 1976년 정부에서 통일벼를 개발하여 전국적으로 보급하고 모든 농민들이 재배하게 함으로써 식량난은 바로 해결되었다. 온 국민들이 쌀밥을 먹어도 쌀이 남아돌았다. 통일벼는 ‘알람미’라 하여 밥맛은 별로 없었으나 생산량은 기존 쌀 생산량의 배를 넘었다. 특히, 조생종인 “밀량21호”보다 만생종인 “밀량23호”는 200평 마지기에 생산량이 기존의 3배인 6백출(가마)에 이르렀다. 정부에서는 남는 쌀로 술을 담그고 국수도 만들게 하였다.

당시 쌀 중에는 “아끼바리”라고 하여 생산량은 통일벼만 못하지만 밥맛이 좋고 기름이 조르르 흐르는 좋은 쌀이 있어 부자 집에서는 이 좋은 쌀로 밥을 지어 먹곤 하였다.

 오늘날에는 쌀밥을 먹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오히려 쌀밥보다는 잡곡밥을 많이 먹는다. 요즘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보다는 건강에 좋고 이로운 것을 선택하기 때문에 밥에도 건강에 좋은 많은 것을 섞어서 먹는다. 옛날에는 정월 대보름 때에 오곡밥이라고 하여 찹쌀에 수수, 좁쌀, 붉은팥, 검정콩을 섞어서 밥을 해 먹었다.

오곡밥은 소화도 잘되고 몸에도 좋아서 아홉 그릇까지 먹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요즘은 과거에는 듣지도 못하던 불포화지방산이니 마그네슘이니 하여 먹는 음식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주부들은 영양을 계산하고 탄수화물보다는 몸에 좋은 곡식을 많이 섞어 밥을 하고, 우리들 일상생활에서도 밥보다는 별식으로 보리밥이나 칼국수를 사 먹는다.

 상대적으로 우리의 주식인 쌀은 그 자리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쌀의 과잉생산과 많은 양의 수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쌀값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정부에서도 수매의 양과 금액을 제한하고 있다.

시골의 많은 농지는 절대농지로 묶어서 재산 가치는 하락하고, 단위당 수입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쌀은 우리의 주식이면서 최후까지 보존 관리해야할 중요한 자산이다. 농지의 효율적인 활용방안과 함께 쌀의 활용도 다양화하는 지원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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