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숙

야래향이라는 꽃이 있습니다. 이 꽃은 낮에는 꽃잎을 다물고 있다가 밤이 오면 향기를 내는 꽃입니다. 오늘 저는 그 꽃 같은 두 분 어르신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대소면에서 제일 넓다고 할 만큼 큰 마을입니다. 사십여 년 전 제가 이 마을로 시집오기 전에는 백여 호가 넘게 많은 집이 있었다더군요. 현재는 칠십여 호가 있으며 젊은 사람들이 객지로 모두 나가고 없어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 살고 있습니다. 시골에는 농한기와 농번기가 있습니다. 농번기에는 여느 마을과 다름없이 모두 각자의 논과 밭일로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쁩니다. 하지만 농한기가 되면 날씨는 추워지고 시골의 여유로운 날들이 시작됩니다.

당연히 연로하시고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많지요. 할 일이 없으니 아침 식사 후 마을 경로당으로 나오십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혼자 사시는 집에 쓰이는 난방류 값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말벗이 아쉬운 처지이니 오순도순 이웃들이 모이는 경로당으로 발걸음을 하는 것입니다. 외로운 처지의 이웃사촌들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점심도 함께 드시면서 적적함을 달래지요. 겨울의 하루를 그렇게 보낸답니다. 경로당에서 점심 한 끼 해결하는데 그 한 끼를 칠 년여 동안 맡아서 하시는 어르신 두 분이 계십니다.

이장님이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경로회장님께서 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우연히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매일 점심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집에서 한 끼 준비하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두 분의 연세가 칠십일 세, 칠십사 세 되신 어르신입니다. 대접을 받아야 할 분들이지요. 건강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다리가 아파서 앉고 일어설 때면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어야 힘들게 일어 설 정도로 불편하신 몸입니다. 이분들은 댁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면 여느 사람보다 일찍 경로당으로 오십니다.

쌀을 씻고 국을 끓이고 반찬 준비를 합니다. 반찬이 항상 대여섯 가지가 됩니다. 어르신들이 많이 나오실 때는 사오십 명이 될 때도 있으나 삼사십 명은 항상 되지요. 반찬거리가 없을 때는 댁에서 잡수시려고 만들어 놓은 것을 가져올 때도 허다합니다.

힘들면 당번을 정하여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그게 쉽지 않습니다. 도시의 어느 경로당은 밥하기 싫어 나가지 않는다는 어르신들이 있다는 말도 있지요. 물론 시골의 경로당에도 그런 분들이 있겠지요? 회원 중에 좀 젊은 분들이 하면 되겠지만 젊은 층들이 더 하지 않으려고 하지요. 그나마 젊은 층들은 경로당에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나 하지 못하는 것이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두 분의 마음에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매일 같이 똑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웃에 살면서 가끔 경로당에 가서 점심을 먹습니다. 일찍 가더라도 밥 할 때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요. 식사 후에 설거지를 해야 하니까요. 이 날만큼은 어르신들이 주방에 나오지 못하게 하지요. 힘들더군요. 겨울에도 땀이 뻘뻘 납니다. 그러면 매일 가서 하면 되겠네 하겠지요? 하지만 조금 젊다고 매일 무슨 할 일이 생겨 밖으로 나돕니다.‘백수가 졸도로 쓰러진다.’는 말이 맞더군요. 마음만은 매일 가서 도와 드리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아요.

 

가끔 설거지를 하면서 느끼는 일이지만 어르신들 중에는 설거지 정도는 도와 줄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 지어 놓은 밥을 상차림 할 때 시간을 끌면서 뒷전에서 일 하는 척 하다가 밥 먹으면서 이사람 저사람 말참견을 하지요. 천천히 먹고 설거지가 끝나갈 즈음 자기 밥그릇을 슬그머니 개수대에 밀어 넣고 나갑니다. 그리고는 커피를 마십니다. 그럴 때는 정말 한마디 하고 싶지만. 더 연세 드신 분들도 알면서 아무 말씀 하지 않는데 싶어 혼자 삭히고 맙니다.

성경 말씀에 보면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 사람이 그렇게 하겠습니까. 다만 너무 생색을 내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요즈음 보면 얄팍한 봉투 하나 들고 오거나, 작은 선물 가져와 사진부터 찍습니다. 방송을 타기 위함이지요. 혹여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자신의 입으로 생색을 내기도 합니다. 지금은 자기가 자기를 홍보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과시하기 위한 봉사가 아닌 진정 가슴으로 하는 봉사가 더욱 아름답지요.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비록 하루 한 끼니지만 동네 어르신들의 식사를 책임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줄 압니다. 돈이 많아 큰돈을 내어 놓는 일이나 밖에 나가 특별한 봉사를 하는 것만이 봉사가 아닌 줄 압니다. 몇 년째 마을을 위하여 힘쓰시는 작은 봉사자 두 분 어르신은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어둠 속에서 향기를 내는 야래 향 꽃 같은 귀한 분들입니다. 맘껏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 자주 찾아가 뵙고 설거지 많이 하겠습니다.

두 분의 도움으로 우리 마을이 더 밝고 아름다운 경로당의 분위기가 오래오래 유지되기만을 바랍니다. 마을 어르신들의 건강도 함께 빌어 봅니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