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순 수필가

 
 

 눈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 속에 슬픈 설날 연휴를 보냈다.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혼자 남겨진 아이인 냥 몸을 움츠린 채 누워 있다.

요양원에 계시던 친정아버지가 명절을 하루 앞두고 돌아가셨다. 죽음 앞에는 후회 아닌 것이 없다더니 아버지를 보내 드린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며칠째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생각만 많아 두통이 심해 견딜 수가 없다.

아버지는 잠바 하나 남겨놓고 떠나셨다. 주머니 없는 옷 한 벌 입고 이승의 끝자락에 누워 자식들과 이별을 했다. 팔십 인생을 의지할 곳 없이 살다 가신 노인이 가엽고 불쌍하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원망조차 부질없는 짓임을 느낀다.

해마다 정초가 되면 절에 가서 정초기도를 올린다. 우리 가족의 평안을 기도하고 스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는데 삼우제에 맞춰 괴산 각연사를 찾았다. 아버지를 위해 영가 등을 달고 108배를 했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지만 극락왕생을 바라는 마음이 크다.

인생이 덧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입춘에도 절에 다녀왔다. 건양다경(建陽多慶)과 입춘대길(立春大吉)이 쓰인 입춘첩을 현관문 위에 붙였다. 아직은 날이 춥지만 맑고 밝은 기운이 따뜻한 햇살과 함께 들어오기를 소망했다.

정월대보름이면 오곡밥과 팥 시루떡을 해서 이웃과 나눠 먹으며 가족의 건강을 바라고 무탈함을 빈다. 한해 농사가 끝난 가을에도 길일에 떡을 하여 수확에 대해 감사드리고 다음해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한다. 허전하고 쓸쓸해서일까. 뼛속부터 새어 나오는 한 숨과 허탈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 시루떡을 준비했다.

청정수(淸淨水)를 받아 시루 앞에 놓고 금강경을 독송하니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액운이 집에 닿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팥떡과 백설기를 집 곳곳에 두었다. 마당에 있는 곳간부터 뒤란의 장독대를 한 바퀴 돌았다.

터주고사를 지낸 샘이다. 뒤꼍 장독대에 떡 접시를 올려놓고 돌담을 바라보았다. 시아버님과 남편이 짚으로 이엉을 만들어 담 위에 올렸던 옛일이 또 다시 떠오르는 것도 우울한 마음에서 시작되나보다.

엄마 따라 절을 하던 아이들이 어색해 하며 꼭 해야 되느냐며 묻는다. 나 또한 혼자 하는 것이 처음이라 멋쩍지만 잘 살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을 아이들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다.

친정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와 달리 빈자리가 너무 커 무엇이든 잡고 싶었다. 집 안의 걱정이 줄어들기를 소원하는 글귀를 붙이고도 혼자 있는 시간이면 깊은 생각에 빠져버린다.

욕심을 내려놓아야 삼재팔난에도 휩쓸리지 않는 다는 스님의 법문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는다. 몸이 바빠지면 허무한 생각도 작아지리라 믿는다.

변함없이 나를 걱정해주는 친구와 이웃이 내게 힘이 되듯이 건양다경(建陽多慶)의 뜻처럼 모두에게 맑은 날과 즐거운 일이 많아 경사가 넘쳐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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