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준란 수필가

 
 

며칠 전 남편과 함께 대전에 있는 두 딸들에게 다녀왔다. 저녁 식사 이후에 차를 마시면서 우리 둘째딸이 요전 새벽에 맹장 있는 쪽이 너무 아파서 응급실을 가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고 말했다. 너무 아파서 근처에 있는 남자친구한테 전화를 했더니 남자친구는 맹장은 아닌 것 같다며 아픈 곳에 찜질 매트를 따뜻하게 데고 자라고 하여 그리 하였고, 다행히도 아픈 것이 다 나아 잘 자고 다음날 문제도 없었다고 했다.

나와 남편은 둘째딸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혔다. 아무리 새벽이더라도 부모도 있고 대전에 사는 언니도 있는데 하필 남자친구냐고 물었더니, 그냥 걱정할까봐 라고 말을 하였다. 우리 큰딸도 몇 년 전에 눈을 다쳤는데, 가장 먼저 연락을 하였던 사람은 부모가 아닌 남자친구였다.

딸들을 만나고 온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커다란 나무 꼭대기에 있는 둥지를 보면서 나의 둥지 속 우리 아이들이 떠올랐다. 아니, 둥지를 떠나가려고 하는 아이들이 떠오르며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떠나온 옛 둥지를 아직도 지키고 있는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친정 엄마한테 전화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더니 하시는 말씀이, “그게 인생인 것 같더라.” 하시면서 웃으신다. 나도 우리 친정엄마와 같이 전화를 하며 웃고 “맞아 엄마, 그게 인생의 흐름이었나 보네요.” 했다.

나 또한 학교 다닐 때까지는 부모님한테 먼저 상의 했던 것 같은데, 남편을 만나고부터는 짝지한테 더 의지하고 상의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님의 둥지를 떠나 새 둥지를 마련하여 살고 있었다. 내가 부모님을 떠나오던 이십대 시절이 내 아이들에게 흐르는 요즘, 오십이 넘은 나는 이제야 부모님 마음을 조금 더 헤아려보게 된다.

우리 부모님도 자신의 둥지를 떠나 새 둥지를 짓는 나를 보시면서 허전했겠지. 하지만 떠나는 나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으며 새 둥지를 짓는 모습을 기쁨으로 바라보았겠지.

내가 우리 친정 부모님의 둥지를 떠나서 새 둥지를 지은 것처럼 내 아이들도 나처럼 언젠가는 둥지를 만들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웃음이 나왔다.

삶이란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고, 그것을 자식에게 주고, 그 자식이 다음 세대에게 똑같이 전해주며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다. 아직은 내 아이들이 새 둥지를 짓지는 않았지만, 새 둥지를 찾고 잘 지으려고 애쓰는 그들의 삶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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