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남 수필가

 
 

신앙생활을 하는 나는 주일날 아침이면 여느 날 보다 더 분주하다.

오늘도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정신없이 교회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휴대폰 벨이 울린다. 발신인을 보니 ‘베트남 아저씨’ 라고 뜬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하자마자 “아줌마, 탕, 탕, 안녕” 나도 반가운 마음에 “안녕 탕, 언제 왔어요 ?” 하고 물었다. 당연히 대답을 들을 수 없는걸 알면서도 자꾸 이것 저 것 물어보았다. 나는 내 말을 하고 탕은 탕 대로 자기 말을 하고 있는데 탕의 딸이 전화기를 바꿔서 말을 한다. 지금 막 인천공항에서 아빠를 만났노라고. 그러니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나한테 전화를 했던 거였다.

탕은 베트남 사람이다. 딸이 우리 이웃동네로 시집을 왔고, 그 후로 탕은 3월이면 한국에 왔다가 11월에 베트남으로 돌아간다. 탕과의 만남이 시작된 건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년 전 이맘 때, 탕의 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아버지가 베트남에서 왔는데 일 할 곳이 있으면 소개 좀 시켜달라고. 마침 우리 인삼밭에도 일손이 많이 필요한 때라서 우선 우리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탕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탕은 눈치도 손도 빠르고 요령도 있어서 한번만 가르쳐주면 알아서 척척 일을 잘 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손짓 발짓 그것도 안되면 시범을 보여 가면서 인삼밭 일을 가르쳤다. 꼭 말로 가르쳐야 할 일은 딸한테 전화해서 아빠한테 이렇게 하라고 얘기 좀 해달라고 해서 해결할 때도 있었다.

3월의 바람은 차고 살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은 날도 있다. 엄동설한을 지나 온 우리들에게도 봄바람은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데 열대지방에서 온 탕은 얼마나 추울까. 열심히 일하고 있는 탕을 돌아보니 털모자를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다 가리고 눈만 나와 있었다. 쌍꺼풀진 커다란 눈이 황소를 닮은 듯이 선하고 순해 보였다. 우리 음식을 전혀 안 먹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의외로 총각김치도 잘 먹고 초고추도 어찌나 잘 먹던지 먹을거리 준비하는 것도 무척이나 수월했다.

탕으로 인해서 연결된 베트남 일군이 대 여섯 명이 되었는데 탕은 완전히 주인행세를 한다. 3년 전에 남편이 3월에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탕이 주인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고 진두지휘 하는 바람에 남편이 맘 편히 치료 받고 회복 할 수 있었다. 남편의 건강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무거운 것도 못 들게 하고 힘든 일을 할라치면 얼른 쫒아 와서 자기가 한다고 밀쳐낸다. 그렇게 탕은 우리와 한 가족처럼 가까워졌다. 봄에 우리 인삼밭에서 두어 달 쯤 일을 하고 나면 여름부터는 우리가 소개 시켜 준 곳에서 일을 한다. 그 곳에서도 일을 잘 한다고 얼마나 칭찬을 하던지 소개 시켜 준 우리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비가 오는 날이거나 일이 좀 일찍 끝나는 날은 삼겹살을 사다가 구워주곤 한다. 일 할 때는 술을 안 먹는데 일이 끝나고 나면 소주를 아주 잘 먹는다. 소주가 몇 잔 들어가면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쉬알라 쉬알라 더 시끄러워진다. 도대체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고개를 끄덕여 주면서 맞장구를 쳐 주고 크게 웃어주면 그냥 다 통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렇게 같이 일 하고 밥 먹고 얘기 할 때면 나 혼자 다짐을 하곤 했었다. 목마른 사람이 샘 판다고 ‘이번 겨울엔 꼭 베트남어를 배워야지’ 그렇게 여섯 번의 겨울이 지나도록 베트남어로 인사 한마디 건넬 줄을 모르니 게으르고 무능한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탕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한국에 와서 일을 하려면 한국어를 배워야지 어째서 몇 년째 오면서도 한국말을 못하느냐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어이없고 한심하고 초라한 것 인줄도 안다. 그러나 말이 좀 안통하면 어떠랴, 통역도 필요 없고 번역기도 필요 없을 만큼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은 다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곳에서 일을 하다가도 우리가 일 할 것이 있다고 하면 언제 든 달려와서 자기 일 처럼 열심히 하는 탕이 한없이 고맙다. 흔히 열대지방 사람들은 게으르다고 하는데 내가 본 탕은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긍정적인 사람 인 것 같다.

낯선 땅 한국에 와서 힘든 일 하는데 마냥 즐겁고 행복할 수만은 없을 것 이다. 나이 많은 사위에 (사위 하고 두 살 차이) 좁은 집에서 사돈하고 같이 살면서 불편 한 것도 많고, 음식도 맞지 않을 것 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향이 얼마나 가고 싶고 그리울까. 담배연기를 내뿜으면서 하늘을 올려다 볼 때는 고향 하늘을 찾고 있는 것 같아서 곁눈질을 해 본다.

그래도 작년에 와서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베트남에 땅도 사고 집도 엄청 크게 지었노라고. 사진을 찍어 와서 보여주는데 나는 그 사진보다도 탕의 얼굴로 눈길이 갔다. 얼굴에 웃음이 만연하고 흥분 된 모습이었다. 나도 덩달아 내 일처럼 기분이 좋았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봄은 탕이 오면서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며칠 전부터 날씨가 풀려서 일을 시작해도 되었을 텐데 남편이나 나, 둘 다 탕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이제 오늘 탕이 왔다고 하니 우리 인삼밭에도 기계소리가 윙윙거리고 활기가 넘쳐 나겠다.

베트남 올 때마다 커피가 맛이 좋다고 몇 세트씩을 사가지고 온다. 올해도 분명 커피를 사왔을 것 이다. 베트남 커피를 마시면서 인연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그리고 겨우 배운 이 한마디를 해줘야지.

‘짜오 찌, 젓 부이 드억 갑 찌’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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