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찬 음성군 평생학습과 도서관팀장

 

 
 

아침에 출근하니 한 부서에서 헌 책을 조금 모아 놓았다는 쪽지가 날아왔다.

책도 수거하고 차도 한잔 얻어마실겸 한걸음에 달려갔다.

스킨만 바른 듯 건조한 느낌에 서글거리는 눈매가 오히려 조화롭다.

웃을 때마다 잔주름이 두세 겹 만들어지니 같이 나이듦에 잠시 헤픈 정이 스미는 데 조용한 겸손까지 겻들여지니 겨우내 걸어두었던 마음의 빗장을 열게한다.

사계절중 유독 즐기며 반색하는 4월 초순 같은 느낌으로 담소를 즐기자니 오늘따라 짙게 칠한 립스틱이 계면쩍다.

아마 아침 산책의 여흥으로 멋을 부리게 했지 싶다.

주말에 이런저런 일로 지친 심신이라 음성천을 돌며 풀어보겠다고 나선 발길이 어느새 수정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툭 불거진 이마에 와닿는 한 점 바람의 유혹에 생각보다 몸이 먼저 선택을 해버린 것이다.

길들여진 몸의 습관은 머뭇거릴 시간을 내주지 않고 맘이 원하는 방식으로 앞서곤 한다.

 미국의 한 풋볼 코치 루 홀츠는

“나는 그저 평범하게 살라고 신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낸 것이 아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하루건너 사고가 터지며 여전하지 못한 상황의 나라에 사니 여전 하다는 것은 다행이고 큰 은총이지 싶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겨울을 이겨낸 갖은 꽃과 나무들이 ‘그 간 어떻게 지냈노라’ 한마디 재잘됨도 없이 조용함으로 반긴다.

여지없이 착하고 겸손한 색들로 채워져 간다.

잘난 척 하지도 않고 보잘 것 없어 자칫 발에 밟히고 묻혀져 버릴 지도 모르지만 보채지도 않고 묻혀 피어난다.

들꽃과 야생화의 꼬물거림을 접하면 존귀함에 핸드폰을 누르게 되고 이름들도 자못 궁금하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그냥 스쳐버리고 잊혀지는 조연이나 스태프들 처럼 자기 역할을 다하는 모양새가 대견하여 흐뭇함으로 마주본다. 

아주 옅게 시작하는 듯하다가 어느 새 과감히 파스텔 톤으로 도화지를 채워가는 이즈음

무명의 화가같은 창조자는 꽤나 그윽한 취향을 지니셨다 보다. 그런 4월의 산색에 잠시나마 무아지경이 되어본다. 분명 지난 겨울 못다한 사랑이라도 있는 게다.

앳된 미련이 여백으로 남아있는 듯한 산처럼 내 인생 산의 여백도 맑은 수채화로 채우리라.

창조자의 마음과 마주할 수 있는 한 시간의 아침산책이 내일도 여전하기를 그리고 더 많은 분들이 충만함 속에 머물기를 바래본다.

명소가 아니더라도 발길 닿는 가까운 곳을 자주 산책하면서 새 봄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열 번이고 백번이고 온전하게 감싸주고 용서해주는 나지막한 주변 산들과 호흡해보자.

둘레길을 돌며 남탓 세상탓 하지 말고 먼저 손내밀고 등을 토닥여 줄 용기를 내보는 다짐도 한번 해보는거야.  

내 인생의 여백을 이제는 어떻게 채울까

하루 한 시간 한 올씩 꽃과 나무와 그리고 새들로 채워보는 것은 어떤가

문득 당신의 아침이 궁금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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