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준란 수필가

 
 

올 해 두 번째 고추장을 담갔다. 처음 담근 고추장은 찹쌀로 담갔었는데, 올해는 보리쌀로 담가보았다. 처음과는 달리 자신감도 생겼고 그래서 처음보다 더 많은 고추장을 담갔다. 첫 고추장은 우리 식구만 겨우 먹을 정도였는데, 올해 담근 고추장은 나이 드신 친정어머니께 드리고 싶은 마음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아서 기분이 좋았다. 내가 결혼한 이후로 엄마의 고추장을 마음껏 퍼다 먹었는데, 올 해는 고추장 담기도 힘들어 하시는 엄마에게 첫 고추장을 드리게 되었다.

나이를 먹고 자식을 키우게 되면서 부모한테 받았던 사랑과 나를 키우시던 부모님의 심정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그러면서 부모한테 잘 하려고 할 때 더 이상 내 곁에 계시지 않는 것이 현실이 됨을 알게 되는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존재는 내게 간절하다. 내 옆에서 오래 살아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몇 년 전 자식을 먼저 앞세우신 내 어머니는 허전한 마음을 달래질 못해서 아직도 힘들어 하신다. 나는 남은 자식으로서 아침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 역시 형제를 잃으면서 외롭고, 그립고, 힘들기에 그 마음을 친구와 이야기 하듯 엄마와 나누면 위로와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비록 전화로 전하는 안부이지만 내 전화에 편안해 지시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며,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먼저 간 자식에게서 못 받은 것을 채워주고 싶어서 내가 담근 고추장을 항아리 속에 정성껏 담았다. 그리고 엄마가 드시고 적적한 마음을 달래시며 남은 자식들의 효를 받으면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이십년 동안 속이 꽉 찬 고추장 항아리를 엄마한테 받아 왔던 것처럼, 그 항아리에 내가 담근 고추장을 가득 담아 엄마께 갖다 드렸다. 엄마는 자식에게 주었던 것을 되받으시면서 마음에 기쁨과 쓸쓸함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본인이 자식한테 주기 보다는 받는 것이 어색하였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화사하게 웃으시는 엄마의 모습이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비록 내가 드린 것은 고추장 한가득 이었지만, 사랑과 힘도 얻었으면 하는 나의 소망이 있었다. 다음엔 된장을 퍼다 먹던 그 항아리 속에 맛있게 된장을 담가 드리고 싶다. 엄마! 오래오래 사세요. 제가 다른 자식 몫까지 효하며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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