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강동대 사회복지행정학과

 

 
 

얼마 전 영국의 유력한 경제지인 파이낸셜타임즈(FT)에서 최저임금을 인위적으로 올린 이후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최저임금의 인상을 통해 사회적 약자인 이들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고자 했던 정책이 결과적으로 그들을 일터에서 내쫓고 있다는 실상을 보도하였다. FT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올라도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경제학자들의 예상과 달리 기업인들은 창조적인 방식을 통해 고용 인력을 축소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의 식당과 달리 영국을 비롯한 양식당에서 주문은 참 힘들다. 도대체 주문을 받으며 무엇을 그렇게 묻는지? 이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복잡해서도 양식당 이용이 꺼려진다. 따라서 이들 식당에서는 우리와 달리 보다 많은 종업원이 필요하고,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해서 결코 직원을 해고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고용주들은 일일이 주문을 받기 보다는 주방에서 표준화된 요리를 내놓고, 이를 판매하도록 하는 방식을 통해 직원들을 해고함으로써 임금상승에 대응하였다.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최저임금상승에 따른 비용절감을 위한 방법으로 종업원 수를 줄임으로써 남아있는 직원들의 노동 강도를 높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실업자의 대열에 합류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선의지(善意志)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경험은 우리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의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행하였던 것이 이런저런 이유로 상대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켜 인간관계에서 곤란을 겪은 일들은 한번쯤은 모두 있었을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치인들에 의해 행해지는 각종 포퓰리즘 정책들이다. 선거 때면 각종 공약(公約)이 발표되고, 이들 정책들의 취지는 참으로 좋다. 가난에 지친 사람들에게 풍요를 약속하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약속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아주려 한다. 또한 공부에 지친 학생들과 사교육비에 버거워하는 학부형들에게는 최고의 명문대를 보다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정책들이 발표되기도 한다. 지상낙원을 만들겠다는 정치인들의 의지만큼은 인정하고 싶다. 물론 이들 공약들의 실현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은 차치(且置)하고서 말이다.

포퓰리즘 정치의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는 나라가 베네수엘라다. 1998년 집권에 성공한 좌파 대통령 차베스는 비싼 원유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돈을 무상 교육, 의료 등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원유가격의 폭락과 함께 베네수엘라는 생지옥을 경험하고 있다. 얼마 전 보도에 의하면 자신의 현재 수입으로 필요한 음식을 조달할 수 없는 국민들이 조사대상의 93.3%에 달하고 있다한다. 빵과 파스타를 주식(主食)으로 하던 국민들은 이제 감자와 야채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그 결과 국민 평균 체중이 9kg이 감소는 강제적 다이어트를 지난 1년 동안 경험하였다. 급기야 최근에는 ‘크라쌍’이라는 고급 빵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제빵사들이 구속되는 초유의 일이 발생하였다. 참으로 어이없고,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더욱 딱한 것은 국가적 파탄에도 불구하고 사후(死後) 차베스의 후계자인 마두루 대통령은 아직도 포퓰리즘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있고, 국민들은 이들 집권자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이들 정책에 중독되어 자조(自助)라는 삶의 자유의지를 상실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의식수준과 선택은 그들의 삶을 결정한다. 세계 최악의 빈국에서 국내총생산(GDP) 세계 11위를 달성시킨 것도 국민들 선택의 결과였고, 막대한 석유자원부국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쓰레기통을 뒤지게 만든 것도 그 나라 민주주의의 결과이다. 자원빈국 대한민국과 자원부국 베네수엘라의 오늘날 경제상황은 모두 선거의 결과였다. 국가가 어려울 때마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을 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어쩌면 정치인은 당연히 그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들이 정치적 결과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아니다.

선택의 결과는 자신의 삶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선거나 인생이나 마찬가지이다. 난무하는 공약 중에서 공약(空約)을 가려낼 의무와 올바른 정치인들을 선택할 책무는 국민들에게 있다. 달콤한 사탕을 주는 정치인이 아니라 쓴 보약을 함께 마실 수 있는 그런 정치인이 우리의 지도자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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