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순 수필가

 

 
 

다년생 잡초들이 잔뜩 자라고 있다. 쌀알 크기의 흰 꽃들이 피고 제비꽃도 피었다. 복숭아나무 근처에는 민들레가 수두룩하다. 2년 전 만해도 많지 않았는데 올해는 그 수가 대단하다. 복사꽃이 피기도 전에 민들레 꽃밭이 되었다.

꿀벌들은 날개에 햇살을 달고 분주히 옮겨 다니며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노란 민들레와 보기 드문 흰 민들레에 나는 시선이 꽂혀 넋을 놓았다. 문득 민들레꽃으로만 몰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과일나무의 수정도 벌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복숭아나무를 찾지 않고 민들레에만 달려들면 여간일이 아니다.

올 봄은 복숭아꽃이 민들레 보다 늦게 펴서 수정에는 큰 문제가 없어 다행이다. 유채꽃 못지않게 예쁘기만 했던 민들레가 지고 복숭아 열매도 콩알만 한 크기가 되었다. 이제는 민들레의 높이가 내 무릎까지 닿는다. 웃자란 줄기마다 솜털 깃 속에 씨앗이 맺혔다.

조금만 건드려도 홀씨가 땅으로 쏟아진다. 씨를 감싼 하얀 털들이 발에 채이거나 소독 줄에 맞고 바람에 흔들려 사방으로 흩날린다. 땅바닥에는 홀씨가 퍼져있어 거미줄이 촘촘히 쳐진 것 같기도 하고 솜을 얇게 펴놓은 것만 같다. 어쩌다 한두 개 보는 것도 아니고 민들레 홀씨가 너무 많아 징그럽기까지 하니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지 싶다.

우리는 복숭아 수확이 끝나는 9월까지 제초제를 쓰지 않는 편이다. 민들레가 주인의 제지를 받지 않고 살 곳을 마음껏 넓히고 있다. 볕이 잘 들어 살기에 적당하니 자유롭게 종자 수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내년 이른 봄 즈음에는 벌들의 몫을 좀 남겨두고라도 대책을 세워야겠다.

풀꽃은 볼수록 정이 든다. 제 각각 자라는 것 같아도 때를 잘 알고 피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어떤 환경에서도 꽃을 피우는 민들레를 보며 아이들도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들에서 일을 하고 있어도 대학생인 큰아들과 고등학생, 중학생이 된 둘째와 셋째가 보인다. 부모가 해주는 것에 비해 잘 자라주고 있고 클수록 예뻐서 고맙다.

조정래 작가는 ‘풀꽃도 꽃이다’라는 소설을 통해 청소년들의 미래를 걱정했다. 학생 한 명도 버려져서는 안 된다는 한 교사의 의식을 통해 경쟁만 하는 교육문제의 심각성을 비판했다. 성적을 높이기 위해 책조차 읽지 못하게 하는 학부모가 있다는 사실에 한숨을 쉰다. 자식을 소유물로만 생각하는 부모 때문에 상처받고 자살을 고민하는 아이가 안타깝다. 사람대접을 받고 싶었다고 말하는 학생의 눈물을 보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문병란 시인이 교실을 서로 다른 빛깔로 피는 꽃밭이어야 한다고 시의 마지막에 표현한 것처럼 청소년들의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하기를 바래본다.

제주도 수학여행 일정을 앞두고 있는 우리 둘째의 환하게 웃는 얼굴은 풀꽃과 닮았다. 안전하게 여행 잘 다녀오고 공부를 해보겠다는데 믿어 주려한다.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주고 응원해주면 자신의 가치를 찾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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