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윤 박 윤 희

갑자기 뒤에서 쿵하는 소리가 나더니 신호 대기를 하고 내 차를 뒤차가 들이박았다. 확인해 보니 다행히 범퍼만 닿아서 크게 부서지지 않았다. 우선 현장 사진을 찍은 후 통행에 방해가 되어 한쪽으로 차를 이동하였다. 뒤차 운전하신 아저씨가 내려서 괜찮은지 물어보셨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어찌해야 할지 몰라 있는데 명함을 주셔서 일단 연락하기로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는데 손이 떨리고 속이 미식거리고 머리가 멍하였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청심환을 사 먹었다. 시간이 지나니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았다.

오후가 되니 갑자기 뒷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후 뒷목 잡고 차에서 내리는 것은 TV드라마에서나 봤지 내가 뒷목 잡을 일이 생길 줄 몰랐다. 아프긴 한데 외상으로는 아무 증상이 없으니 병원에 갈 수도 없고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자고 일어나니 뒷목이 뻐근하긴 했지만 병원 갈 정도는 아니 것 같아서 참았다. 남편의 말이 근육이 놀라서 그런 거니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해서 참아보기로 했다.

다음 날 접촉사고 내신 아저씨한테 연락이 왔다. 청심환 먹고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고 접수는 안하겠다는 나의 말에 아저씨는 고맙다며 잊지 않을 거라는 말에 그냥 넘어간 것은 잘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런데 며칠 후 목이 점점 더 아파오기 시작했다.‘괜히 그냥 넘어 갔나?’‘병원에 입원할 걸 그랬나?’후회가 되었다.‘다시 전화해서 아프다고 해야 할까?’고민을 하며 그냥 넘어간 것에 대해 복잡한 생각들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주변 지인들이 왜 교통사고 접수를 안 하는지, 병원에 가서 검사는 안 하는지 등 나의 행동이 의아한 모양이었다. 합의금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나를 붙잡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20여 년 전 운전 미숙으로 인해 크게 교통사고를 낸 적이 있었다. 학원차로 학생들을 태우고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하다가 오토바이를 탄 할 아버지를 친 적이 있었다. 처음 난 사고였는데 당황하는 것도 사치였다. 그 순간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 생각이 없이 멍했다. 피가 철철 흐르는 할아버지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어느 누구도 피 흘리는 할아버지를 태워줄 차는 없었다. 결국 내가 타고 간 차로 병원까지 이송을 해야 되는데……

어찌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주유소에서 주유하던 아저씨 한 분이 달려와 사고 낸 사람을 직접 운전 할 수 없다며 자신이 병원까지 운전해 주겠다고 했다. 병원까지 가는 동안 난 할아버지가 죽으면 어쩌나 감옥에 가는 건 아닌가? 겁이 떨컥 났다. 그런 나에게 할아버지가 술을 드신 것 같으니 음주측정을 요구하라고 했다. 또, 교통사고 처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이것저것 알려주면서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병원에 도착해 나는 경찰에게 할아버지 음주측정을 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사고처리와 환자의 병원 치료 등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그 아저씨께서는 바빠서 가야한다고 하셔서 급하게 아저씨 명함을 받아 주머니에 넣고 연락드릴 것을 약속했다. 다행히 할아버지의 음주로 인해 나는 가해자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보험처리는 보험회사가 처리해 주고 나는 범칙금을 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를 도와주셨던 아저씨가 생각이 났다. 주머니를 다 뒤져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명함이 없었다. 아마 병원에서 흘린 것 같다. 그 아저씨의 연락처를 알기 위해 지난 번 주유소까지 가서 여쭈어 보았지만 업무차 대전에서 충주로 오가는 정도밖에 모른다고 하셨다.

가던 길을 멈추고 피로 범벅인 할아버지를 차에 싣고 병원까지 손수 운전해 주고 본인은 택시를 타고 주유소까지 가신 분이 요즘 흔치 않다.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살면서 문득문득 생각이 났고 그 분의 작은 선행이 나의 인생과 함께 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 기억이 항상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운전할 때마다 나를 뒤돌아보게 했다. 나에게 작은 접촉 사고쯤은 그냥 넘어갈 줄 아는 아량도 생겼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찌될지 아무도 모른다. 가끔은 손해 보는 것 같고 억울하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미래에 닥칠 내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마음을 넓게 갖게 했다. 그 때 그 아저씨의 작은 배려가 나에겐 긴 여운으로 남아서 남을 좀 더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한 것 같다. 그 기억이 이번 사고에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감사함으로 남아 또 다른 배려를 싹 틔우길 바라는 마음으로 후회와 미련을 날려 버렸더니 후련하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