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식 전 음성교육지원청 행정지원과장

 
 

1970년대 우리나라 마을주변 산은 대부분 민둥산이었다. 농촌은 물론이고 도시에서도 땔감으로 나무를 사용하였다. 집집마다 밥을 해먹거나 난방에 나무를 사용하다보니 나무장사가 유행하였다. 겨울철 시골의 모든 남자들은 아침을 먹으면 으레 산으로 나무를 하러갔다. 주로 풀을 베어서 지고 오는 것이 많았다.

팔로 네 아름(전)이면 지개로 한 짐이었다. 갈퀴로 낙엽을 글어 모으는 ‘갈퀴나무’는 땅을 박박 글어서 돌이 한바가지나 나오기도 했다. 또 ‘물거리’라 하여 어린나무를 잘라 오기도 했다. 여름에는 ‘풋나무’를 잘라 말리는 것이 유행했다. 눈이 오는 때에는 죽은 나뭇가지를 자르고, 나무 둥치를 도끼로 잘라오는 ‘고주박’을 했다. 나무를 해서 저장하는 것은 시골생활에 필수였고 중요한 일이었다. 보통 나무하러 가는 거리가 십리는 가까운 거리였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만 그나마 나무가 있었다.

산은 날이 갈수록 황폐화되고 곳곳에 사태 복에는 아이들이 모여 놀곤 했다. 벌거숭이산에 대한 걱정을 하던 정부에서는 외국에서 속성수를 도입하여 전국의 산에 심었다. 주로 아카시아나무와 낙엽송, 리기다소나무 등이다. 물론 심거나 거름 주는 인건비는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은 시골사람들의 부역으로 이루어졌다.

가구마다 1인은 의무적으로 나와야 했다. 매년 4월이면 나무가 마을 별로 배정이 되고 면사무소에서는 마을별로 주민을 동원해서 산에 심었다. 비료를 주고 풀을 베어주는 것도 주민들 몫이었다. 또한 마을별로 ‘산감’이라고 하여 산에 나무를 지키는 사람을 두었다. 생나무를 자르거나 장작을 하는 사람을 단속하고, 대신 밤나무 등 유실수를 심어 수확해서 갖도록 했다.

요즘은 숲이 깊어 산에 다니기도 어렵다. 정부에 단속 때문이 아니라 생활 여건이 변함에 따라 나무를 해서 사는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고 대신 겨울에도 농사일이나 부업을 한다. 가정마다 화목보일러나 기름보일러가 설치되면서 나무를 하는 풍습은 사라졌다. 우리 조국근대화의 큰 숙제인 산림녹화는 이루어졌다. 산에는 사람이 들어가기 어렵게 우거졌고, 많은 짐승들이 마음 놓고 살고 있다.

산림경영의 방향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경제임업이고, 둘째는 환경임업이다. 산림녹화 사업을 시작할 때, 정부가 땔감에만 표적을 맞추지 말고 목재를 생산하는 산으로 생각했다면 더 좋은 경제 산림으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한다. 산림 벌채 현장에 가보면 대부분 나무는 화목용으로 밖에 쓸 수 없는 상황이다.

2016년 3분기에는 우리나라가 세계 2위의 목재 수입국에 올랐다. 건축이 늘어나면서 가구 뿐 아니라 공원에도 많은 목재가 쓰인다. 산에 벌채를 하거나 수종갱신에 있어 좀 더 체계적이고 경제성을 생각하는 안목 있는 행정이 이루어 져야 한다. 최근 들어서는 낙엽송이나 리기다소나무를 펄프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으며, 아카시아 꽃을 이용하여 벌꿀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등 종래 땔감으로 밖에 사용할 수 없었던 수입품종 나무들의 활용 방안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대규모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수십 년 길러온 나무가 잘려나가고 산이 마구잡이로 파헤쳐지고 있다. 아파트 신축 등 난개발과 마구잡이씩 골프장 개발 등으로 수십 년간 우리 선배들이 기르고 가꾼 이 강산이 망가져서는 안 된다.

환경을 보전하고 조화를 유지할 수 있는 쪽으로의 개발이 이루어 져야 한다. 자연과 더불어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서로 공생하면서 누리며 살 수 있는 임업 환경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 땅은 우리 자손만대가 살아가야 할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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