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준란 수필가

 

 
 

 우리 큰딸이 중3 이었을 때 기도제목이었던 ‘예쁘게 말하자’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나는 남편과 만난 지 30년이 되어간다. 우리에게도 서로 바라만 봐도 기분 좋고 설레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부터 우리는 서로의 주장을 강하게 내다보니 불협화음이 생기곤 했다.

최근에 남편은 내가 나이 50이 넘으면서 목소리가 커졌다고 말했다. 나는 그냥 30대처럼 사는 것 같은데, 남편 보기에 나는 남자가 되어가고 남편은 여성화가 되는 것이 틀림없는 듯하다. 그렇게 서로 목소리를 내고 서로 잘 했다고 주장을 하다 보니 며칠간 말도 안하고 냉전중일 때가 있기도 한다. 애들이 어렸을 때엔 아이들 때문에 대화가 끊임없이 있었는데, 모두 타 지역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서로 대화를 먼저 하려 않고 마음의 전쟁을 하고 있을 때는 지옥이 따로 없다. 우리 부부가 대화거리를 찾지 못하고 서로 바라는 것에 목마르고 있을 때 둘째딸이 한 달간 집에 와서 있게 되었다.

둘째딸 아이가 엄마 아빠 모습을 보고 속이 상했는지 가족끼리 대화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우리 부부를 앉히고 서로 눈을 보고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야기 할 때 언제 부턴가 눈을 보지 않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래서 서로 듣는 것이 부족했다고 딸은 말했다. 우리는 그 지적에 동감을 하였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으려 않고 내 말 하는 것에만 급급하다보니, 우리 부부는 예쁘게 말하지 않고 명령어나 퉁명스러운 말 표현을 주로 하며 서로 상처를 주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대화 교육 속에서 딸은 목소리가 크면 크다고 얘기하고 얼굴보지 않고 다른 곳을 주시 하고 말하면 다시 얼굴 보고 눈을 보며 이야기하게끔 여러 번 우리를 가르치고 또 가르치며, 우리 부부를 1시간동안 대화연습을 시켰다.

이렇게 딸아이의 대화법을 따라하면서 남편의 예뻤던 눈을 오랜만에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이가 먹으면 말함에 책임이 있어야 하고 이에 부드러움이 깃들어야 하는데, 나는 더 큰 목소리로 짜증과 퉁명을 담아 말을 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 때문에 딸로부터 교육을 받게 되었던 것이 창피하였지만 우리는 이로 인해 화목을 찾게 되었다. 부족한 것을 깨닫게 해준 딸한테 고맙고, 그동안 소홀히 했던 남편한테 미안했다.

우리 큰딸아이가 말을 예쁘게 안한다고 선생님들한테 꾸중을 들어서 책상 한쪽 면에 기도제목으로 말을 예쁘게 하자라고 붙여놓고 연습 했던 것이 생각난다. 우리 부부도 큰딸 아이가 연습했던 것처럼 올바른 대화법을 열심히 연습해본다. 알지 못 했던 나의 말 표현 속에 남편이나 자식들이 상처를 입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말을 함에 있어서 예쁘게 말하고, 눈을 마주하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고 오늘도 나는 또 연습을 해본다. 더 사랑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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