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나영 음성가정(성)폭력상담소장

 
 
최근 주요이슈가 되고 있는 데이트폭력 문제는 이미 오래된 문제였지만, 제대로 문제화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언론이나 매스컴을 통해 연일 끔직한 사건들이 보도되면서 경찰청에서는 데이트폭력, 성추행 등 젠더폭력을 막기 위한‘여성폭력 근절 100일 계획’을 추진한다고 23일 밝혔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연인 간 폭력 사건으로 입건된 사람은 8천367명으로 2015년 7천692명보다 8.8% 늘어난 수치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폭력은 낯선 사람에 의해 강제적인 수단으로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친밀한 관계 특히 데이트 관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잘 상상이 안될 뿐만 아니라, 실제 폭력이 발생해도 연인들 간의 일시적 다툼이거나 흔한 사랑싸움 정도로 취급되기 쉽다. 그리고 피해자 역시 폭력과 친밀한 감정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며 이 문제를‘폭력’으로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피해자가 폭력 사실을 인지하더라도 가해자에게 피해자 집이나 주변인, 개인 정보 등이 노출된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관계를 정리하거나 적극적인 법적 대응을 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많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신고율도 매우 낮은 편이다. 또 하나 연인 관계에서 일어난 폭력을 사적 영역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도 그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연인 관계를 경험한 여성의 절반 정도가 데이트폭력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2016년)에 따르면 여성과 남성 각각 2,000명을 대상으로 데이트 폭력 피해 및 가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 여성 응답자의 76%가 상대 남자로부터 언어적,정서적,신체적,성적,경제적폭력과 통제 및 감시 등 다양한 형태의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상당히 심각한 수치이다. 더 큰 문제는 그에 따른 사회적 인식과 법적 처벌은 역시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라는 점이다. 한국여성의 전화 자료에 의하면 여성 피해자가 남자친구나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했을 때 스토킹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조사되었는데 한국에서 스토킹은 경범죄 처벌법 제3조의‘지속적 괴롭힘’ 조항에 따라 스토킹을 한 사람은 해당 조항에 따라 10만원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과료의 형에 처한다. 그러나 스토킹의 특성상 향후 폭행, 살인 등 다른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다가 피해자의 자유로운 일상을 현격히 침해하는 만큼, 처벌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데이트폭력으로 구속된 가해자는 3년 동안 이성을 만날 수 없다. 영국에서는 데이트 상대의 폭력 전과를 조회할 수 있는 클레어법이, 미국에서는 데이트 폭력 가해자를 의무 체포해 피해자와 격리하도록 하는‘여성폭력방지법’이 시행 중이다. 한국에서는 가정폭력이 아닌 데이트폭력의 경우에는 격리 조치조차 할 수 없다. 가해자의 보복에 대해서 사실상 무방비 상태인 것이다.

폭력은 그 어떤 이름으로도 용인되거나 미화되어서는 안되는 분명한 범죄행위이다.

젠더폭력규제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스토킹이나 데이트폭력과 관련된 법률의 개정이 시급하다. 더 이상 개인의 일로만 방치할 수 없는 데이트폭력, 침묵과 방관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가가 책임지고 지역사회가 적극적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안전망 강화를 위해 앞장서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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