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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랭지에서 보는 삶이 정 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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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10  10: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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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섭이네 사과는 맛있다. 겨울 사과는 물론 초가을 사과도 딴딴하고 야물다. 그 즈음 출하된 사과를 보면 산뜻한 맛이 덜했는데 민섭이네 사과는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오빠네 사과도 맛은 있다. 빨갛게 잘 익은 것을 따서 먹을 때는 괜찮아도 오래 두면 금방 물러진다. 생각하니 오빠네 과수원은 들판에 있었다. 비탈이 없기 때문에 소독을 해도 금방 끝난다. 사과를 따는 날도 교통이 좋아서 작업이 수월한데 먹어보면 차이가 난다.

깊은 산 속에 있는 민섭이네 과수원은 교통이 불편한 오지에 있기 때문에 그리 맛있었던 걸까. 도로변에서 한참 들어가면 강이 보이고 거기서도 30분은 가야 나온다. 산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하늘만 빠끔한 외딴 산속에서 짓는 소위 말하는 고랭지 농사다. 경사가 급한데다가 비탈이 져서 소독이나 적과를 할 때도 몇 갑절 힘들었다지. 그 위에 꼬불꼬불한 산길은 수확을 해서 운반할 때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되 그 악조건이 맛을 형성할 때는 오히려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여름에도 얼음골에 들어간 것처럼 썰렁했으니까. 한여름 동기간이 모일 때도 바닷가에 갈 필요 없이 개울에 발만 담그고 와도 온몸이 시원해진다. 우물도 어찌나 차가운지 손이 시릴 정도다. 피서철이면 우정 가서 땀을 식히곤 했던 이유다.

한여름에도 그랬으니 여느 때는 말할 나위도 없다. 바람이 불면 깊은 산속은 태풍이 몰려오는 것처럼 스산하다. 일찍 깜깜해지는 건 물론 절기도 산 아래 동네보다 훨씬 빠르다. 양지쪽에 있다가 그늘에 들어가면 겉옷을 입어야 될 만치 선선하다. 품종도 같고 농사짓는 방식도 비슷한 가운데 단지 밤낮의 일교차가 심한 날씨 즉, 유달리 차가운 공기와 시원한 바람이 고랭지 과수의 독특한 맛을 형성했을까.

사과뿐이 아니다. 고추며 참깨농사도 짓는데 깔이 참 고왔다. 어쩌다 참깨를 사서 기름을 짜먹어도 별나게 고소했다. 옥수수 또한 강원도 찰옥수수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겨울에 무 배추를 뽑아 들여 김장김치를 담그면 강원도의 채소 맛 그대로다. 김장에 필요한 갓과 파 마늘까지 거기서 가꾼 것을 쓰게 되니 그럴 수밖에 없다.

평지의 과수원처럼 순조로운 인생과 깊은 산속의 고랭지 농사와 같은 힘겨운 삶도 있다. 들판의 과수원은 바람도 세지 않고 햇빛도 고르게 비칠 테니 때깔이 오히려 더 고울 수 있다. 실제 민섭이네 과수원은 바람이 세고 날씨도 들쭉날쭉 변덕스러워 때깔은 오빠네 것보다 못한데 맛은 훨씬 좋았던 것처럼.

평지의 과수원처럼 살 수 있다면 물론 다행이다. 깊은 산속의 과수원처럼 굴곡이 많을 때도 고랭지 과일의 특징을 유념하면 참을 만한 여지가 있다. 내 삶의 여정이 꼬불꼬불 곡절이 많고 악조건에 휘말려도 계기로 삼을 때 참된 인격의 정수가 나온다. 민섭이네 밭은 산 속이라 바람까지 오래 머무르는 등 문제가 많았으나 과수원으로는 최적이었다. 과일이 잘 되는 곳에는 태풍이 잦다. 평지든 비탈이든 나름이다.

장벽과 시련은 가로막는 게 아닌 그로써 이루게 될 성공적인 삶과 그 너머 손짓하는 행복이 얼마나 절박한가를 보여준다. 사과조차도 태풍을 견디면서 익는다. 역경은 잠재된 능력과 재주를 일깨우는 최선의 방법이다. 민섭이네 사과를 먹을 때마다 새겨 두는 삶의 한 지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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