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자 수필가

 

 
 

산을 오르는 중이다. 바위를 쪼아 만든 계단은 한사람이 겨우 통행할 수 있다. 좁은 돌계단은 협곡을 따라 곳곳에 만들어 놓았다. 이곳 중국의 황산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계단 옆은 천 길 낭떠러지다. 긴장한 나는 두 손에 땀을 쥐고 앞사람의 발뒤꿈치만 보며 따라 걷는다. 얼마쯤 걷다가 잠깐씩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산의 비경을 바라본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솟아오른 기암절벽들이 장관이다. 사람들의 감탄 함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케이블카의 도움을 받아 산 중턱까지 왔다. 그러고도 3시간째 산행 중이다. 정상에서 기념 촬영을 마치고 좁은 돌계단을 내려오는 길목에서 짐을 지고 오르는 여러 명의 짐꾼을 만났다. 짐의 무게가 힘에 부친 듯 연신 수건으로 땀을 닦는다. 굵은 대나무를 반으로 잘라 양 끝에 커다란 바구니를 하나씩 매달고 있다. 짐의 무게에 대나무가 휘청거린다. 나무 중간을 한쪽 어깨에 올려 중심을 잡고 걷는다.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는 몸의 반동을 이용하며 오르고 있다. 바구니 속에는 생필품과 각종 식료품이 가득 들었다.

짐꾼들은 검게 탄 얼굴에 하나같이 몸이 야위었다. 길목에서 짐꾼을 만난 여행객들은 그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옆으로 비켜 지나가기를 기다려 주었다. 나는 그들이 힘겹게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부피가 큰 짐을 양 끝에 매단 젊은 짐꾼과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짐꾼도 있었다. 그들은 굵고 튼튼한 나무받침대 하나씩을 손에 들고 있었다. 유난히 가파른 계단을 오르던 그들은 가쁜 숨을 몰아쉰다. 힘에 부치는 듯 어깨 위의 짐을 무릎을 살짝 구부려 어깨가 닿았던 곳에 받침대를 받쳐 놓았다. 허리를 펴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연신 흐르는 땀을 닦고 다시 어깨에 짐을 받쳐 들고 걸음을 재촉했다.

안내원에게 짐의 무게를 물어보았다. 젊은 사람은 한쪽에 60kg씩 120kg 정도의 짐을 나르고 나이 든 사람은 그의 절반 정도라고 했다. 짐꾼의 대부분은 중국의 서쪽 지방 산시성, 쓰촨성, 청두 등 가난한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몇 시간째 가벼운 짐으로 걷는 나는 그들의 야윈 몸과 무거운 짐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아마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헌신적인 노고와 사랑은 한 가정의 책임자로서 자부심인 듯했다.

나는 동행 한 남편의 손을 잡았다. 우리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의 자리에서 한 치의 양보 없이 뚜벅뚜벅 걸어온 그가 있었다. 일찍이 그는 짐의 무게에 휘청거리며 일어서지 못할 것 같아 내 마음을 졸이게 하던 때가 여러 번이었다.

이십 대 초반 우리는 이른 결혼을 했다. 뚜렷한 직업 없이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짓던 남편은 경험 없는 건축자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두 아이가 태어났고 사업도 제법 자리가 잡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몇 년 사이 혼기가 찬 형제들의 결혼과 분가 등, 짧은 기간에 연이은 집안의 대소사도 있었다. 많은 여유자금이 필요했던 사업도 뜻대로 되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남편의 어깨는 처지기 시작했다. 사업은 달리던 궤도를 벗어났고 그동안 부모님이 힘겹게 일궈 놓은 전답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많은 빚만 안은 채 하던 사업을 접었다.

몇 년의 방황 끝에 그는 늦은 나이에 봉급생활자로 전환했다. 그는 가족의 생계와 무거운 빚더미까지 등짐이 되어 더더욱 내려놓을 수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직장의 치열한 경쟁 속에 앞서가는 동년배의 승진을 바라보며 한 걸음 뒤처진 현실 앞에 마음은 또 얼마나 버거웠을까. 힘겨움에 짓눌려 허우적대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 쓴 술잔을 기울이고 늦은 밤 퇴근해 돌아오는 그를 이해하기보다 나는 원망 섞인 목소리만 높였다. 삶의 무게가 그리 버거운데 그의 넉넉한 마음이 없었다면 아마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30년을 넘게 묵묵히 등짐으로 지고 걷다가 남편은 얼마 전 퇴직을 했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 바위틈에 수려한 소나무를 바라본다. 소나무는 높은 바위틈 난간 주어진 공간에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당당히 서 있다. 산의 웅장한 모습이 있는가 하면 깊은 계곡도 존재한다. 그곳에는 습하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절망의 늪도 있다. 지금 우리 가족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은 비바람을 맞으며 우리 집 대문을 수문장처럼 지키며 앞만 보고 걸어온 그가 있기 때문이다. 황산의 가파른 길을 오르는 짐꾼이 버틸 수 있는 것도 그들의 희망인 가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황산의 좁고 험한 계단을 오르며 우리는 함께 걷는 법을 배운다. 앞으로 남은 길은 작은 짐도 나누며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자고 나는 그의 손을 잡는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