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선

돋보기 안경을 쓰고 한참 책을 읽다보면 눈이 침침하고 뻑뻑하여,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기도하고 깜박거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책을 펴둘 때 보다 덮어둘 때가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요즘 들어서 부쩍 눈이 침침하다. 사십대 초반에 백내장 수술을 받으라는 의사의 권유를 흘려듣고 몇 년을 버티다가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서야 수술을 했었다.

수술을 받고 보니 진작할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틈새의 먼지도 너무 잘 보여서 청소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갈 지경이었다. 선명하게 사물이 보인다는 게 이렇게 좋은지 수술 전에는 몰랐다. 그렇지만 세월을 잡을 수 없다보니 노안도 막을 수 없어 돋보기 신세를 가끔씩 지고 있다.

얼마 전에 엄마에게 손거울을 하나 선물했다. 앞면은 일반 거울이고 뒷면은 돋보기 거울이라 엄마 연세를 생각하니 편할 것 같아서 사드렸다. 그런데 80나이의 엄마가 불평불만이 갑자기 몇 배 늘었다. 연세에 비해서 주름도 적고 얼굴도 작은 편이라 어디를 가든 당신 연세보다 적게 보는 것을 흡족해하셨다. 그런데 돋보기 거울로 얼굴을 보니 작은 점이나 주근깨, 큰 주름은 물론이고 잔주름까지 너무 선명하게 보여 얼굴이 엉망이라며 하소연을 하신다. 엄마 연세에 비해서 정말 젊어 보인다는 말을 수없이 해도 별 효과가 없었다. 지나친 배려가 화를 자초한 결과라고 선물을 사주고도 가족들에게 핀잔만 들었다.

결혼 전에 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적당히, 대충이란 말은 통하지 않았다.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는 너무 긴장해서 땀이 날 때도 많았다. 0.01%만 틀려도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라 모든 것이 정확해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병원을 그만두고도 앞에서 정확하게 바라보아야만 안심이 되고 마음이 편했다. 정확한 것만 고집하다보니 자꾸 따지게 되고 융통성이 없다는 소릴 듣게 되었다.

친구 시어머니는 80이 넘어서도 집안 살림에 뭐든지 간섭을 한다. 환갑이 다가오는 며느리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고 지적하며 당신의 정정함을 과시하셨다. 본인은 정정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영락없이 80노인인 것을 자신만 부정하려한다. 나이가 들면 청력도 약해지고, 시력도 나빠지고, 기력도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그러니 큰소리만 듣고 큰 것만 보고 말을 줄이도록 조물주가 만들어 놓았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살면서, 아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앞에서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옆에서 바라보니 더 편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똑바로 앞에서 볼 것이 있고 옆에서 바라봐도 되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융통성이 없다는 소리도 이제 듣지 않는다. 오히려 배려심이 깊다는 소리까지 듣고 산다. 나이에 맞게 적당히 주름도 있어야 하고 기력이 쇠잔해지면 뒤로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나도 내 나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주말에는 친정집에 들러서 엄마 나이에는 지금의 얼굴이 가장 곱고 예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하고는, 돋보기 없는 거울로 슬며시 바꾸어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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