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순 수필가

 
 

9월 들어 복숭아밭에 올라가는 것이 더 싫다. 나무에 매달려 있어야 할 복숭아가 땅 위로 수북하다. 봉지를 씌운 수만큼 모두 따서 작업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스치기만 해도 뚝뚝 떨어진다. 경운기 바퀴에 눌려 곤죽이 되거나 곰팡이가 펴서 까맣게 썩는 것이 수두룩하다. 말벌부터 크고 작은 날벌레들이 복숭아에 달라붙어 속을 파먹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소름까지 돋는다.

올해는 농사짓기가 유난히 힘이 들었다. 봄에는 긴 가뭄으로 우리 속도 타들어갔다. 농장에 관수시설을 갖추지 못해 나무들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남편이 비탈을 기다시피하며 호스를 연결하면 나도 옆에서 뒷심부름을 해주면서 겨우 물을 주었다.

농사는 기후에 대한 대책이 정말 중요하다. 예전처럼 주어진 상황에서만 만족하며 일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미리 대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왜 미처 그 생각을 못했을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하고 품종에 대해 알아본 뒤에 일을 시작했으면 좋았을 것을 말이다. 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농사에 대해 무지했던 내가 지금에 와서 답답하고 한심한 이유이다.

비는 오랫동안 오지 않았고 한두 번 물을 주고 수확을 시작했다. 열매가 커야 될 때 크지 못해 복숭아의 크기가 예전보다 많이 작았다. 복숭아를 딸 때면 즐겁던 마음도 사라지고 재미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전국적으로 복숭아 농가가 늘어난 탓에 물량이 쏟아져 나와 경락가가 한 상자 당 1만원이 넘는 것이 고작이었다. 과일지도가 바뀔 수 있을 만큼 파동을 예상했지만 통장에 들어오는 금액을 확인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다음 품종 수확할 때는 나아지리라는 기대와 달리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농부의 땅에 비가 지겹도록 내렸다. 나뭇잎에 물기가 마를 날이 없고 남편의 옷도 늘 젖었다. 흙에서는 복숭아 쉰내가 진동을 했다.

사람들은 비가 오는데 복숭아를 따느냐고 물었지만 비를 맞으면서도 열매는 익어갔다. 농부들은 하나같이 속상함을 토로했다. 경매가가 형편없다하고 벌레가 먹어서 멀쩡한 것이 몇 개 없다고들 난리였다.

우리인들 별수 있을까. 그저 허허 웃으며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 사람들도 복숭아의 과잉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을까. 잦은 비로 복숭아가 맛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택배주문이 줄었다. 그래도 맛을 본 고객이 우리 복숭아를 주문해 주어 그나마 조금 더 팔았지만 작년보다 수입의 차이가 컸다.

여름내 따던 복숭아가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어서는 날씨가 좋다. 하늘이 제법 높아졌고 바람도 선선하여 곡식이 익기에 알맞다. 우리의 신세는 복숭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여름내 내렸던 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고목이 애써 잡고 있던 열매는 벌레가 먼저 맛을 보았고 나무 옆으로만 지나가도 떨어져 굴렀다. 오래된 나무이니 ‘어찌하랴’는 마음으로 이해하다가도 과실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는 것이 갑갑했다. 작은 흠집도 아까워 이웃과 나눠 먹으려 했던 내가 나무에서 따내면서 내던져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올해는 일에 적응을 잘 하는지 얼굴보기가 좋다고 말하는 지인들에게 웃기만 했을 뿐 속을 풀지 않았다. 우리부부만이 가끔 앓는 소리를 주고받았다. 자재 값과 임대비를 지출하고 나면 빠듯하게 살아야 할 겨울이 걱정되어 마음은 쌀쌀하지만 희망을 버릴 일은 아니다. 여름내 일을 도왔던 큰아들과 시누이 덕에 인건비 지출을 줄인 것이 어디인가.

남편은 가을전정을 시작했다. 나무를 말끔하게 이발시켜주어 햇살이 잘 통하도록 해줘야 한다. 내년 농사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농사일을 시작한지 오래된 것도 아닌데 시행착오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할 때이다. 실망이 컸던 내 마음도 정리가 필요하지 싶다. 남편은 일하기 싫다는 나를 다독거렸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작은 열매를 따서 작업을 해서 보내니 경락가가 예전 수준으로 나왔다.

우리 집 복숭아가 먹어 본 것 중 맛이 제일 좋았다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일 할 맛이 난다. 땅위로 열렸던 수많은 복숭아들이 내년에는 나무에서 온전히 우리의 손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싱싱하고 좋은 과일을 먹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고객의 문자알림이 내게는 희망의 소리로 들린다.

힘겨웠던 한 해를 보낸 복숭아나무와 나는 지금 숨 고르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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