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등짐을 내려놓은 나귀의 기분이 지금 나의 마음과 같을까. 늘 따라 다니던 걱정을 얼마 전 시댁에 내려놓고 왔다.
몇 달 전부터 어깨를 짓누르는 맏며느리의 책임, 그것은 시어머니의 환갑을 해드리는 일이었다.
가족의 의견에 따라 가까운 친척을 모시고 음식을 마련해 집에서 하기로 하였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부터 앞서는 마음이 책임감 내지는 의무감으로 작용했다.
이런 현상은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주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아마도 여자들이 겪어야할 평생의 짐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무거웠던 마음은 음식준비를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즐거운 기분으로 일을 하는 나를 발견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항상 내 옆에서 일을 도와주는 시누이들의 마음이 예쁘고 고맙다.
그리고 시어른이나 친척들도 며느리가 제일 고생이 많다며 위로를 해준다. 그것이 바로 맏며느리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족들과 친지들을 모신 가운데 케익에 촛불을 밝히고 생신을 축하하는 노래를 불러드렸다.
폭죽이 터지고 샴페인의 뻥∼하는 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울렸다.
어머님의 얼굴표정을 살짝 엿보니 기쁨으로 승화되어 눈가에는 물기가 어려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며 건강하게 우리 곁에 오래오래 계시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평생에 한번 오는 뜻깊은 하루를 맞이하면서 어머님이 즐거워하시는 모습이 먼 훗날 내자신의 모습으로 비춰 보이기도 하였다.
갓 결혼한 새댁시절 때다. 나는 가끔씩 토요일에 시댁엘 갔다. 시댁의 가풍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시아버지가 어렵게만 느껴져 가기 전부터 걱정을 한다.
그러면 마음이 불안해지면서 머리가 아파 왔다. 그러다 시댁의 대문 앞에 서면 한숨이 저절로 나왔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어른이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도 아니었는데 긴장하고 실수하고 집에만 가고 싶어졌다.
옛말에 시집살이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시댁의 생활에 적응이 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십 년을 넘긴 세월을 사는 동안 많이 변한 나 자신을 발견한다.
때로는 득과 실을 저울질하며 계산적일 때도 있었고,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속으로 얼마나 많이 미워했던가.
그래도 서로 이해하는 가운데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지내온 고부의 사이는 시어머니의 넓은 마음 때문이다.
그 동안 어머님은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젠 시댁이 참 편안하다.
시누이나 시동생도 피붙이처럼 사랑스럽고 시부모님도 친정부모처럼 느껴진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쯤이면 어머님은 아들, 딸에게 나눠줄 곡식이나 채소를 챙기느라 맨발로 뛰어다니신다.
사랑을 주시는 어머님의 입가에 흐믓한 미소가 흐르면 보이지 않는 행복이 내게로 전해져왔다.
오늘 하루도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마음속에서 작은 행복을 느꼈다.
가족이란 기쁠 때 같이 기뻐해 주고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 때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서로 아끼고 이해하는 마음을 항상 같이해야할 것 같다.
우리가족의 웃음소리가 담을 넘는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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