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명 자 수필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 좋다, 저절로 탄성이 터진다. 수십 년을 살아 온 익숙한 내 집을 두고 우리는 병원에서 이십 일을 살았다. 그것도 매 순간 마음 졸이며 희망과 절망을 오가면서다. 벽면에 걸려 있는 부모님의 초상화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웃으신다. 집 안으로 들어서는 남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집은 기다렸다는 듯이 피곤에 절은 우리를 따뜻이 맞아 품어준다. 20일 전 새벽녘 우리는 컴컴한 어둠의 배웅을 받으면 집을 나섰다가 지금 돌아온 것이다.

남편은 올해 들어 외출이 잦다. 다른 사람들의 외출은 외국 여행이나 삼복더위를 맞아 피서를 다녀왔다고 그간의 여행담을 늘어놓는데 우리 내외가 한 외출은 남들과 사뭇 다르다. 나이 탓인지 남편의 몸 이곳저곳에서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여러 번의 병원 행이다.

그는 새벽녘에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었다. 머리가 아프다는 말에 몸을 살펴보니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머리의 통증을 호소했다. 당황한 나는 119를 불렀다. 그분들의 도움으로 차에 오르고 병원을 향해 경광등을 울리며 달리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제자리를 맴도는 듯 초초했다. 응급실에 도착하여 검사결과는 뇌출혈이었다.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었다.

응급실을 거쳐 수술을 마친 남편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곳은 24시간 깨어있는 공간이었다. 환자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항상 긴장감이 맴돌았다. 하루 두 번 면회시간에 맞춰 달려갔다. 초조한 마음으로 남편을 만나면 통증을 호소하는 그에게 아무 도움을 줄 수 없어 마음만 아팠다.

요즘 시시각각 남편의 체온과 혈압은 요동치고 있다. 그러면 내 심장이 마구 뛰고 간호사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렇게 초조했던 시간이 지나가고 남편의 눈길이 내 걱정을 시작할 무렵 중환자실에서 입원실로 옮겼다.

새벽녘 의료용품을 실은 철재 기구의 바퀴 소리와 함께 간호사의 방문이 이어진다.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그의 얼굴에 조금씩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안타까움뿐이다. 무심코 창가를 바라보다가 누군가 갖다 놓은 꽃바구니와 눈이 마주쳤다. 조화처럼 정교하게 생긴 꽃을 다가가 가만히 만져보니 손끝으로 전해오는 체온이 느껴졌다. 남편의 체온도 꽃의 체온처럼 같은 온도를 유지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남편은 병상을 털고 일어났다. 야윈 그의 손을 꼭 잡고 병원 문을 나섰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목소리는 힘차고 우리는 함께 웃음꽃을 피웠다. 그가 온전히 본인을 위해 쓴 시간은 얼마나 될까. 이 시대의 모든 남편들이 그렇듯 그도 가장이란 등짐으로 보낸 시간 속에 몸은 안으로 고통을 삭이고 마음은 더 많은 인내를 요구했을 것이다. 책임감으로 살아온 그 이름. 어디 내 남편의 일상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의 모든 남편들이여, 이제는 당신을 위해 남은 시간 중 내 몫의 시간을 즐기시라 꼭 전하고 싶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