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원 음성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한양대학교의 차윤경교수는 홍익인간 그러니까 만인을 이롭게 한다는 가치가 결국 너 나 차별과 다름없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나타낸다고 하며, 그 이념과 가치를 다문화한국의 기원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음성지역에 흔히 볼 수 있는 베트남 이주민들을 보게 되는데, 베트남 이주민들의 기원은 어떻게 될까요?

이에대한 옛 자료들을 찾아보니 이미 고려시대에 베트남 왕족이 정착하였고 성씨를 하사받아서 화산이씨와 정선이씨의 기원으로 지금도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면 베트남 리 왕조(李朝) 연원을 두는 정선 이씨의 시조 이양혼(李陽,리 즈엉 꼰)은 베트남 리 왕조 인종 이건덕(仁宗 李乾德, 재위 : 1072년 ~ 1128년)의 셋째 아들이자, 제5대 황제 신종 이양환(神宗 李陽煥, 재위 : 1128년 ~ 1138년)의 아우로 신종과 왕위를 다투다가 북송으로 망명하여 송나라 문하시중이었던 진(陳)씨의 딸과 결혼하였는데, 송나라 휘종(宋徽宗, 재위 : 1100년 ~ 1125년) 때 금나라와 공격으로 북송이 쇠하고 남송으로 전환되는 1127년(고려인종 5년)에 고려로 들어와 경주에 정착하고, 그 후 이양혼의 9세손 이우원(李遇元)은 국자생원(國子生員)으로 상서 좌복야에 추봉되어, 정선(旌善)으로 이거(移居)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정선(旌善)을 본관으로 하여 가문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웠던 고려 무신중 한명이었던 이의민(李義旼)은 6세손으로 당시 상장군으로 우리가 배웠던 인물입니다. 무신정권후기에 최충원에게 죽임을 당한 이의민의 후세들이 멸족을 피해 강원도 정선으로 옮겨 살면서 정선을 본관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려시대에 우리가 아는 한 베트남 최초 이주민이 들어온 것입니다. 참고로 고려시대 귀화된 성씨만 60여개로 학자들은 추청하고 있습니다. 정선이씨의 이양혼이 베트남 리(L?)왕조5대 신종의 동생으로 본다면, 또다른 베트남왕족 이민인 화산이씨의 시조인 이용상은 베트남 리왕조 7대 고종의 동생으로 보고 있습니다. 1226년, 조카인 혜종이 왕 즉위 후, 혜종의 외척 쩐투도(진수도)가 국력을 잡게 되어 리왕조가 멸망되자, 이용상은 이를 피해 배를 타고 도피합니다. 그는 구사일생으로 계절풍을 타고 흘러흘러 한반도 황해도 화산(옹진반도)에 도달합니다. 장장 3천600여㎞나 되는 거리였습니다.

그 후 고려에 몽골이 침입하자, 격퇴시키는 공을 세우고, 그 공으로 임금(고종)으로부터 ‘화산군’의 작위와 함께 화산이씨 성을 하사 받았고, 화산 일대를 식읍으로 하사도 받습니다. 화산에는 지금도 유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때 쌓았다는 안남토성,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찾아가 울었다는 망국단, 리 왕조의 시조 이름을 딴 남평리, 나라 이름을 본뜬 교지리 마을 등이 그것입니다.

현재 화산이씨는 남한에만 약 260가구에 1천400명 가량 살고 있고, 북한에는 더 많다고 합니다. 경북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는 시조 이용상을 모시는 사당(충효당)도 있습니다. 베트남에는 화산이씨의 사원과 축제가 있습니다.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박닝성에 있는 도(DO)사원이 그것인데, 매년 음력 3월 1일이면 축제가 열립니다.

이엏듯 음성지역 주변에 볼 수 있는 이웃인 베트남 이주민들의 역사는 우리의 생각보다도 훨씬 이전이며, 이미 우리사회에 한 가족으로 살았고, 살고 있었던 이웃입니다. 다문화한국 알면 알수록 우리국민과 하나임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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